김동길교수 칼럼

2697 준비없이 길 떠나랴?

아나로그. 2015. 10. 18. 17:49

2015/09/18(금) -준비 없이 길 떠나랴?- (2697)

 

먼 길을 떠난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리고 그 긴 여행이 그의 일생에 있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몇 마디의 충고와 함께 “여비에 보태 쓰라”고 봉투를 하나 건네주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길 떠났다 돈 떨어지면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 찬송가> 290장의 1절이 이렇습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나는 인생을 스물 네 글자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왔다가 늙고 병들어
왔던 곳을 찾아서 되돌아간다

죽음을 ‘돌아 간다’고 표현하는 이 백성의 잠재의식 속에는 세상을 건질 수 있는 하나의 비결이 있다고 나는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 또는 “그가 죽었다”는 표현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는 이 겨레 - “어제 어머님이 돌아 가셨습니다”라고 한국의 아들들은 사랑하는 어머님의 죽음을 신앙으로 받아들인다고 나는 믿습니다.

종교란 왜 있습니까? 중생에게 ‘돌아갈 곳’을 알려주기 위해서 있는 것 아닙니까? 죽음으로 사람의 일생이 다 끝나버리고 그 뒤에는 기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인간의 70년 또는 80년의 삶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돌아갈 곳이 있다면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오늘도 길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루하루의 삶에는 뿌듯한 의미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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