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13 준비하신 시험
준비하신 시험
190113 조원형목사님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세기 22:1~7)
한 사형수에게 마지막 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사형수가 마지막 5분중에서 1분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생각과 마음을 쏟아 정을 나눈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다. 2분은 자신에게 은혜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린다. 1분은 함께 사형당하는 동료들과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나머지 1분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데 집행관이 그냥 앉아있다. 추후에 한 사람이 와서 사형을 연장한다고 하고 그 후에 사면된다. 그가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 에프스키이다.
그 기억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글을 쓴다. "죄와 벌"이다. "카르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 등의 불후의 명작을 남긴다.
시인 괴테는 시에서 말한다.
사람은 살면서 역경 고난을 통해 뭔가를 배운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은 아픈 상처, 원한의 기억을 켭켭이 쌓는다. 방을 치우지 않고 산다고 생각하면 더러워서 짐승사는 것만 못하다 할 것이고 지치게 될 것이다. 집안에 물건을 쌓아놓는 사람이 TV에 가끔 나온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청소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시인 괴테는 연단 아픔을 통해 인생의 학습 과정을 배운다고도 말한다.
또한 인간은 고독하다고 말한다.
고독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만나며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괴로울 때 고독할 때를 만난다. 우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헤아린다.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았다는 사실이다.
출애굽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서 심판이 지나갔다. 심판이 지났다 하여 편안히 사는 것이 아니다. 연단의 길로 나아간다.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점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고난을 겪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연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점 때문에 우리를 양육해 주심을 깨닫는다.
교회 내에서 믿었던 사람들, 교역자들과도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시험거리가 생긴다. 이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돌아올 때 형과의 관계로 인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한다. 복주십사 밤새 기도하니 환도뼈를 치신다. 이후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신다. 시험 시련당할 때에 창세기22장의 말씀처럼 감당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강권의 손으로 붙잡아주심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밤에 꿈에서 짐을 싸라 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에 용기도 생기겠지만 그 실천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 말씀에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주신다. 믿음의 보물이다. 구약의 보물이며 신약에서는 그 보물이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구약의 보물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다. 극한 상황이다. 욥기에서의 극한 상황도 열 아들이 하루 아침에 죽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일이 끝나고나서는 내 믿음을 연단시키시는 것임을 깨닫는다.
로마서 4장에서 이삭은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두 노인에게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표현한다.
그 때 얻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성령님이 도우시길 기도한다. 기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마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려 한다. 내 욕망 교만 자존심이 나를 넘어지게 하는 시험이다. 믿음이 부족해서 겪는 시험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 기도와 순종 밖에 없다. 조카 롯을 통해서 자식이 없으니까 자식처럼 사랑을 베풀었지만 오히려 롯 때문에 많은 시험을 당하는 아브라함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험당한다.
"슈퍼 스타 크리스트" 영화에서 예수님 역할의 배우가 고민한다.
이 시험을 이겨내면 그 보상은 뭡니까.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그 보상은 뭡니까. 영화속에서 기도한다. 여러가지 모함을 받고 죽기까지 되었다. 시험 시련 갈등이 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로까지 고민한다. 그 보상이 무엇인가.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보상 심리를 못 박는 것 뿐이지 보상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여기에서도 보상심리는 작동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
미리 알면 연단이 아니다. 설명이 있으면 시험이 아니다. 침묵하고 갈등하고 몸부림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엘리야가 무릎 사이에 머리를 7번이나 뭍고 기도했다는 것은 사력을 다 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죽은 후, 아니 세상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응답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험을 통하여 소망과 영원한 세상을 사모하게 한다. 이 땅에서의 시험 역경을 통해 아브라함을 배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면 아버지처럼 됩니까 회의를 느끼며 묻는다.
그러나 아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그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부만이 네 할 일이다. 이에 인내하고 순종한다. 아브라함이 모리야산에 오를 때 하나님은 뭐하셨나. 함께 하셨다. 이삭을 짐승처럼 각을 떠서 하나님께 바치는데도 아브라함은 받을 것을 고대하며 올랐다.
스데반도 사도들도 순교자들도 하나님께 받을 소망을 가지고 견뎌내었다고 히브리서는 말한다.
이를 믿음의 연단이라 한다.
이 모든 시험을 지금 보상받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이를 이겨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