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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나로그. 2020. 2. 9. 08:55

사랑하고 있습니까

 

200209                     평촌동 새중앙교회 박준수목사

 

(요한계시록2:1~7)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소아시아 오늘날 터어키지방의 7개 교회를 설명한다.

그 중 에베소교회에 대한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칭찬과 책망이다. 7개 교회중 칭찬과 책망 모든게 있는 곳이 에베소교회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의 2차전도여행으로 시작되었다. 두란노사원에서 강론한 곳 즉 사도행전19:8의 회당이 이곳이다. 두란노사원에서 2년간 바울이 가르쳤다.

 

이 에베소교회에 하나님의 칭찬과 책망이다.

2절에서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 하신다. 어떤 행위와 수고인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였다. 이단에 대하여 복음의 진리를 지켰다. 6절에서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한다.'니골'은 정복자, 파괴자란 뜻이고 '라'는 백성이란 뜻이다. 백성을 파괴한다는 뜻이다. 니골라당을 통해서 에베소교회는 수고하고 그 거짓을 드러냈다. 거짓을 분별하고 드러내어 내쫓았다. 진리를 수호했다. 그 말씀으로 진리를 우상과 이단이 많은 곳에서 지켜내었다. 그런데 책망이 있다. 복음과 진리를 지켰지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4절에서 말씀한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

이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처음 변화되어 가졌던 사랑, 구원의 감격과 자발적 지원과 행위를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잊어버리고 형식만 남았다. 진리 문제로 이단을 잡아내었지만 처음 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사랑은 잊었다. 근본적인 본질인 사랑은 잊었다.

사역과 봉사, 예배의 현장에서 사랑이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데 처음 마음을 잊어버리고 기계적, 형식적이 되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매주 드리는 이 예배가 반복되어 형식적이지 않는가. 봉사와 사역의 현장도 마찬가지이다.

 

내 자신이 컴퓨터전공학부에서 말레이시아 해상가옥 불법체류자 를대하며 가르치고 예배드렸다. 무슬림 아이들이 알라를 찬양하며 할렐루야라고 부름에 도전이 되었다.

결국 신학을 배우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현실에 안주하며 첫 마음이 식지 않았나 고민한다. 처음 사랑을 회복코자 노력한다.

 

또 다른 사랑은 이웃간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본질이다. 요한1서4:20에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성경의 기본이다.

 

에베소교회를 통하여 책망하신 것에 대한 대안도 알려주신다. 5절말씀이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먼저, 생각하라. 어디서부터 떨어졌고 얼마나 멀어졌는지 생각하라. 그리고 회개하라. 잘못을 회개하고 방향을 바꾸어라. 다시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회개하여 처음 열매를 가지라는 것은 행위의 실체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물어보신다.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옛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랑을 묻는다. 그 사랑은 처음 주님을 만나고 감격하고 사랑했던 그 사랑이다. 그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말세에 불법이 횡행하고 사랑이 식어진다.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사랑을 회복하면 그에 따른 열매가 나온다.

그 반응은 기쁨으로 예배에 나오게 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전도와 선교로 반응이 나온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어도 기도하고 찬송했다. 즉 예배했다. 옥문이 열렸어도 도망하지 않고 간수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한다. 기쁨으로 예배하고 전도와 선교의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이 주시는 책망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동일한 모습은 아니다. 여러 환경과 처지가 다르다. 예수님의 첫사랑의 체험자리가 되길 원한다. 첫경험을 하신 분들은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자. 봉사예배사역이 형식적이 아니라 우리의 처음사랑이요 본심에서 우러러나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