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시면류관. 이 가시관은 아타드 가시나무로 만든 것이다.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서사물 시리즈-가시면류관)  부활절 직전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1주일 동안 ‘고난주간’을 지킨다. 올해의 고난주간은 3월 28일 종려주일부터 4월 3일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크리스챤들은 여행을 자제하고, 가무를 삼가는 한편 고기를 과식하지 않는 등 절제된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장인이라면 회식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주간에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셨다. 예를들면 채찍과 가시면류관의 고통, 배고픔과 추위, 배반과 조롱당함,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인류구원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영적 부담감 등이다. 그 중에서 가시면류관은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상징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가시면류관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마 27: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막 15:17),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요 19:2)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모두 ‘아칸다’이다. 그러나 이 식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다.

어떤 학자는 장미과에 속하는 덤불 Thorny burnet을 가시면류관의 재료로 지목한다. 이스라엘 야산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아랍 크리스챤들은 지금도 고난주간이 되면 이 가시나무로 면류관을 엮어 선물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시르’로 불리는 이 나무는 가시가 워낙 촘촘하여 가시에 손이 찔리지 않고는 관을 만들 수 없으므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정성스런 선물로 여긴다.

로마의 한 성당에서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에서 가져왔다는 긴 가시 하나를 본 일이 있다. 그러나 가시가 워낙 길어서 광야에서 자라는 싯딤나무의 가시인 것처럼 보였다. 조각목으로도 불리는 싯딤의 가시는 한국의 탱자나무 가시보다도 결코 짧지 않은데, 운이 좋으면 이스라엘 성지순례 중에 이 싯딤나무로 만든 면류관을 구할 수도 있다.

싯딤나무(조각목)는 광야에서 자라는 나무로서 현실적으로
예수님의 가시관을 만든 나무로 보는데는 무리가 따른다.


이에 비해 실제로 가시면류관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강력한 후보는 생각보다 가시가 짧다. 히브리어로 ‘아타드’로 불리는 이 가시나무는 가시가 짧은 대신 단단하여 사람의 이마를 찔러 피를 내기에 충분하다. 이스라엘 전역에 자생하고 있으므로 성지순례 중에 조금만 눈여겨 보면 주차장 부근이나 성지에서 우리나라의 대추나무를 닮은 이 가시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세계기독교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여러 학설들을 감안하여 여러 종류의 가시면류관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타드 가시면류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비록 예수님이 직접 머리에 쓰신 관은 아니지만, 액자 속에 보관되어 있는 이 가시면류관을 볼 때마다 구원에 대한 감사가 넘쳐난다.

면류관이란 원래 왕이 정장을 할 때 머리에 쓰는 관을 말하는데, 앞뒤에는 면류(冕旒)가 달려 있었다. 면류는 끈에 주옥을 꿴 것으로서 한국의 경우 12줄이 원칙이다. 왕이 아닌 사람이 면류관을 쓸 경우에는 제후(諸侯)의 경우 9줄, 상대부(上大夫)는 7줄, 하대부는 5줄을 늘어뜨렸다.

예수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에는 이러한 면류가 붙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이 쓰신 것은 면류관이라기 보다는 가시관이었고, 면류관 보다는 화관(花冠)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성경이 화관으로 번역하지 아니하고 굳이 면류관으로 번역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즉 화관은 여성들의 예장(禮裝)에 사용되는 관이지만, 면류관은 왕이 사용하던 것으로서 왕으로 오신 그분에게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의 번역들은 이 면류관을 ‘왕관’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잘 한 일로 보인다.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홈페이지 www.segibak.or.kr 성서사물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