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갈 아이와 인서울도 힘든 아이… 똑같은 수업 듣는 게 말이 됩니까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입력 : 2013.02.23 03:05
![](https://blog.kakaocdn.net/dn/dBVuEB/btrLTCMJ4A7/X2BwFmTFwvAeVvV9dzmglK/img.jpg)
누구는 교사 생활 20년 만에 처음 매를 든 거라고 했다. 또 누구는 오늘 전교에서 딱 한 명 때렸는데 그게 너라고 했다. 다른 누구는 다시는 체벌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이 너 때문에 무너졌다고 했다.
이 세 분의 누구는 전부 소생의 몸 곳곳에 사랑의 매를 실현하신 고등학교 때 은사님들이다. 심각한 문제아 아니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거니와, 한 놈 제대로 '잡아서' 기강을 세우려 했을 때 하필 때마다 소생이 거기 있었을 뿐이다.
학교에 정이 붙을 리 없었다. 그런데 정말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업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과 뒷자리 소생 사이에는 너른 강 하나가 흐르고 있어 선생의 말은 그 물살을 건너오지 못했고 내 눈과 귀는 지식의 작은 파편조차도 받아내지 못했다. 어렵게 말하니까 쓰는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공부는 못했고 수업은 어려웠다는 얘기다.
화학 시간이었다. 첫 수업에 선생님은 몇 가지 공식을 설명하다가 "이건 중학교 때 배웠지?" 하더니 대뜸 다음 장으로 넘어가 버렸다. 허참. 왜 선생님은 중학교 그 수업 시간에 불운하게도 급성 맹장염으로 결석한 학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하지 않는 것일까.
두 번째 수업부터는 선생님 말씀이 완전히 외계어로 들렸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다. 머릿속에 남은 거라고는 H₂O 하나밖에 없다. 그나마도 H가 산소인지 수소인지 헛갈린다. 그런 학기가 무려 여섯이라면 화학에게도 미안한 일 아닌가.
수업 시간 배정이 많았던 수학으로 가보자. 일주일에 3시간 곱하기 4주 곱하기 9개월 곱하기 3년을 하면 무려 324시간이다. 그 시간 내내 소생은 멍하게 창밖만 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사람을 '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게 진짜 폭력이다. 학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최악의 폭력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수준에 맞는 수업을 허(許)하라. 별거 아니다. 단순하다. 같은 과목에 난이도가 다른 수업을 여러 개 개설하는 거다. 학생은 첫 시간을 들어보고 더 낮춰 들을지 높일지 결정하면 된다.
한 학기 들었는데 역시 기억나는 건 H₂O밖에 없다면 또 들어도 된다. 무슨 얘기인지 대충 감이 오실 것이다. 학점제다. 제시한 학점만 채우면 졸업을 시켜주는 거다. 큰 틀까지 말하자면 유(有)학년, 유학급, 유담임, 학점제다. 아침에 조회 마치면 교실을 찾아다닌다. 당연히 종례도 있다. 이렇게 되면 병든 닭 같았던 아이도 능동적으로 변한다. 선택을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니까.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사이의 위화감이 생길지 모른다고? 그건 학교와 애들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다. 서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아이들은 그런 일로는 상처 안 받는다. 더 바란다면 과목당 최저 학점 이수제다. 수학이 싫은 학생은 정해진 최저 학점만 들으면 된다. 가령 최저 1시간, 최대 5시간 뭐 이런 식이다.
위와 같은 계산법이라면 소생은 고등학교 때 108시간만 수학 수업을 들었으면 됐다. 같은 수업을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니 지금보다 수학 실력이 나을 것도 틀림없다.
수십 년째, 서울대에 갈 애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일이 당대에는 불가능한 애가 한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받는 무서운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비효율과 비극은 제발 좀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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