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노비치 - 다뉴브강의 잔물결(Donauwellen Walzer)
이 곡의 원곡은 루마니아왕국의 초대 군악대 총감독을 지낸 이바노비치 (Iosif Ivanovich)가 1880년 군악대를 위한 곡으로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물결' 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의 영향을 받아 작곡 되었다고 한다. (다뉴브강은 '도나우강'의 영어식 표현.)
전주곡과 4개의 小왈츠 및 종결부로 되어 있으며 단조와 장조를 조합하여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애수를 띈 특유의 선율은 동유럽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이 음악은 대부분 많은 뮤지션에 의해 편곡되어 불리워진 것이며 첨부한 영상도 편곡하여 안드레 류가 지휘하는 화려한 연주곡이다. 한국에서는 일제 시대 최초의 성악가 윤심덕이 부른 <死의 찬미> 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윤심덕 - 死의 讚美
윤심덕은 1923년 동경음악학교를 관비생으로 졸업하고 돌아와 음악활동과 교편생활을 하였다. 1926년 극단 토월회(土月會) 회원으로 신극운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 7월에 연극관계로 알게 된 이기세(李基世)의 주선으로 당시 유행하던 번안가요 「매기의 추억」·「어여쁜 새악시」 등 10곡의 노래를 취입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갔다. 8월 1일 취입 예정에 없었던 이바노비치 작곡인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가사를 붙인 「사의 찬미」를 동생 윤성덕의 피아노 반주로 취입하였다. 가사는 윤심덕이 썼다.
8월 3일 윤심덕은 애인인 극작가 김우진(金祐鎭)과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 도중 김수산(金水山)·윤수선(尹水仙)이라는 가명으로 유서를 남기고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즉, 유부남과의 사랑을 정사(情死)로 끝을 맺었다. 다분히 염세적인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는 이들의 정사사건과 더불어 많은 음반이 팔려 음반판매의 촉진제가 되었다.
(이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첨부한 영상의 음악은 윤심덕의 육성입니다.)
관련된 영상과 자료를 찾아보며 한동안 심취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최초 방송이라는 "춘하추동 방송"과 여러 곳에서 좀더 상세한 자료와 사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국비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학교 선생님, 배우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 시대에 앞서가는 신여성이지만 가정은 넉넉치 못한 평양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을 위해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20세 처녀조차 별로 없던 시절에 나이 서른이 되도록 미혼으로 살았고 30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 때 신문을 비롯한 모든 보도매체는 큰 지면을 내어 현해탄에서 그의 애인 김우진과 함께 자살했다고 보도했지만 뒷날 유럽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또 자살할 성품이나 환경도 아니고 또 그가 물속에 뛰어든 것을 본 사람도 없으며 당시의 전후 정황으로 보아 그 때 세상을 떴다 할지라도 자살이 아니라 기획타살이 자살로 위장발표된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윤심덕이 방송국에서 노래를 불러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그가 시험방송을 하면서 세상을 뜬 후에 정규방송을 내보냈기에 시험방송에서 명성을 얻을지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키가 크고 활달한 성격에 일본 유학중에 있었던 홍난파의 사랑 고백도 거절했으며 유학시절 함께 교제하였던 여러 친구들중에서도 이미 국내에서 부잣집 아들로서 처자를 두고 대를 이어야 하는 유부남인 김우진과의 정사는 더더욱 아니라지만 보도매체에 나온 처녀와 유부남의 정사 뉴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윤심덕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레코드판과 전축이 많이 판매되었다는 것이 기획타살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윤심덕이 길게 편지를 써서 김우진으로 하여금 일본으로 오게 하였고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는 중에 유품을 김수산(김우진)과 윤수선(윤심덕)의 고향으로 보내달라는 메모에 의거하여 情死로서 발표된 것입니다.
하면서도 일본의 일동축음기주식회사에서 레코드판과 함께 나온 아래 사진을 보며 기독교인으로서 새로운 감상에 빠져듭니다.
일본에서 음반 취입을 하면서 계획에 없었던 "사의 찬미"를 요청하여 동생 윤성덕이 반주하고 윤심덕이 노래하여 레코드판에 삽입하였다는데 윤심덕이 죽은 후에 나온 것이지만 "부활의 기쁨"이라는 기독 찬가도 같이 삽입되어있는 점입니다. 즉 찬송가를 불렀던 기독교인이었다는데서 당시 여러 정황들을 다시금 상상해보게 됩니다.
기독교인도 자살할 수 있는 것인가.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또하나의 살인이고 십계명을 어기는 중차대한 죄악이라, 하면서도 부귀영화를 원하는 기복신앙도 아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주위 환경과 처지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결국 염세 사상으로 굳어지면서 하나님 계신 천국을 사모하며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는 정황도 짐작은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여튼,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의 악보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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