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질투
210530 조원형목사님
(창세기 4:3~12)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우화이다.
독침을 가진 한마리 전갈이 강가에서 서성거린다. 강가에 오기까지는 무서움이 없었다. 독침을 가진 전갈이라고 소문이 나서 전갈이 오는 길에는 그 어떤 훼방꾼도 있을 수 없었다. 강가에까지 왔는데 문제는 헤엄을 칠 줄 모른다. 어떻게 이 강을 건너나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서성거린다.
마침 개구리 한마리가 강가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강을 건너려고 하니까 전갈이 부른다. 여차저차하여 이곳에 왔는데 헤엄을 칠 줄 모르니 나를 엎고 강을 건너게 할 수 없겠는가 하니 개구리의 대답이 당신이 독침을 가졌다는걸 세상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데 당신을 엎고 강을 건너가다가 만약에 나를 쏜다면 내가 죽을거 아니요 내가 죽을 짓을 왜 합니까 한다.
이에 전갈이 강을 건너다가 당신을 쏜다면 당신 죽고 나도 죽는데 아무리 내가 독하기로서니 나 죽고 당신 죽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를 건너게 해 주면 은인으로 삼겠다 한다.
개구리 생각에 그 말도 맞고 전갈과 친하면 일신상에도 좋을거 같아서 등에 엎혀서 강을 건넌다.
그런데 강물이 호수처럼 순탄치가 않고 강물이 세고 출렁이며 바람도 불어 개구리 등에 엎힌 전갈이 개구리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발버둥치다가 실수하여 꽁무니 독침으로 개구리에게 상처를 낸다. 개구리가 죽어가면서 세상에 당신같은걸 등에 엎고 강을 건너는게 잘못되었다, 당신에게 속았다 하니 전갈의 대답이 나도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내 본성이 그런걸 어떻게 하겠소 한다.
본성의 문제이다.
이 본성을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하여 생각해 본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신앙인으로서 오늘을 살아가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도 본성의 문제, 타락의 문제, 부패의 문제, 성경 본문처럼 시기와 질투의 문제가 나를 괴롭히고 남을 괴롭힌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때가 있고 나를 자멸, 파멸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예수를 아무리 잘 믿고 신앙 생활을 오래하고 교회에서 귀한 직분을 맡아도 성경은 네 본성이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지적하고 경각심을 준다.
사람이 가축들을 집에서 키운다.
그런데 사람은 그 짐승들의 본성을 알고 있다. 송아지를 낳으면 아주 어렸을 때는 그냥 두지만 조금만 커도 코를 뚫는다. 아무리 순한 소라도 짐승의 본성으로 주인을 받을 수 있고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해를 끼칠 수 있는 본성이 있어서 코를 뚫는다. 고삐를 뚫어 어렸을 때부터 다스린다. 아무리 사랑해도 채찍질도 하고 키운다.
짐승들의 본성을 알기에 우리를 만들고 새장을 만들어 거기에 가둔다. 어느 때에 주인에게 해를 끼칠지 모르고 어느 때 도망을 가서 다른 짐승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니 잡아서 가두어 두지만 짐승들은 거기를 나가면 죽을지도 모르기에 자꾸 뛰쳐나가려 한다.
고삐를 채우고 목줄을 걸어 가두어 두어야 그 짐승도 살고 키우는 사람에게도 유익이 된다.
성경 본문에서 가르치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본성은 타락한 본성이다, 네게 시기하고 질투하는 본성이 있다고 말씀한다.
네 동생과 네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는데 네 동생의 제사는 합당해서 받았고 네 제사는 네 마음 심보부터가 틀려서 네 제물을 받지 않았더니 네가 분노하고 시기하는구나, 동생을 질투하는구나, 네 마음을다스리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본문 말씀에서 하시고 있다.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하려 하지만 자녀들은 그 교육을 안받으려 한다.
왜 교육을 해야 되나, 왜 윤리를 가르치고 도의를 가르치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율법을 가르치나.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다스려서 사람 노릇하게 한다. 사람이 자라면서 윤리도 계명도 배우지 않고 제 마음대로 본성대로 살다가 죽이고 별짓을 다하다가 제 인생을 망치고 말기에,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로부터 시간 교육, 마음의 교육, 자세, 양심의 교육을 가르친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지식의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가르치는데 인간 근본 도리, 윤리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안되어 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급한 마음에서 집을 짓지만 기초 공사를 잘해놓지 않으면 바람불고 홍수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그 집은 무너지는 것처럼 인간의 기본 교육이 안되니까 그냥 무너진다.
그 때문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육이 필요하고 교회교육, 사회교육이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하다.
요사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자동차 운전을 해도 법을 지키고 선을 지켜야 하는데 제 마음대로 운전하는게 아니라 제 성격과 마음을 다스려가면서 운전해야 나도 피해입지 않고 남에게도 피해끼치지 않는다.
법과 질서가 왜 필요한가.
인간 본성이 타락하고 부패했기에 사람이 윤리로 얽매는거 같지만, 율법이 자유를 박탈하는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 있는데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게 아니고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
사람이 교육받은 계명대로 사는게 자기에게 이롭고 남에게도 이롭다. 이에 하나님은 계명으로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보니 타락한 짐승의 본성과 다를 바 없다. 주인의 질서, 법이 아니면 제 마음대로 살고 싶다. 그러한 사람들로 자랐으니 그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먼저 계명이 필요하다. 그레서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계명부터 주셨다.
그런데 사람의 본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누구인가.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지도자로 삼으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게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다. 연단을 받고 광야에서 40년의 고난을 겪지만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리라 약속하신다. 모세가 그 백성을 이끈다. 결론에 가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도자 모세가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딛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모세를 주인으로 섬기고 시종으로 일관하며 40년을 충성한 여호수아 갈렙은 가나안 땅을 밟았는데 모세는 못 갔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그 내용이 나온다. 왜 못들어갔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감사해서 하나님께 찬양했다. 그런데 홍해바다앞에서 큰 시련을 겪게되니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 보시기엔 아직 어린아이 신앙같으니까 홍해를 열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광야에 들어오니 먹을 양식을 구하기가 어렵다. 또 원망한다. 애굽에서 있을 때 노예이지만 주인껄 훔쳐먹어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는데 광야에 와서 노력해도 안되고 원망한다. 하나님은 그 기도도 들어주셔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다. 연단시키시는 과정에서 물이 없는 곳에 가게 되어 사람도못살고 짐승도 못살고 아우성이다. 모세가 또 엎드려 기도하니까 모세에게 반석위에 나아가서 서라 그리고 반석을 쳐라 그러면 물이 나오리라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때에 모세의 심정이 어땠나.
애굽에서 나올 때만 해도 10가지 재앙의 기적을 친히 보았다. 친히 기적을 행한 사람이다.
홍해바다에 와서도 홍해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들어 치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건너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앞장선 사람으로 이끄신 은혜에 감사했다.
그런데 광야에 가서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가 연속되면서 모세는 하나님앞에 감사한 마음보다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이게 문제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처음에 기적적인 은혜를 입을 때는 감사하고 찬양하는데 연단의 과정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시련이 계속되면 원망한다. 자식이 커서 잘되면 처음엔 부모의 사랑, 은혜인줄 알지만 나중에 커서 시련이 오면 부모에게 별별 원망을 다한다. 왜 날 낳았습니까. 나를 죽이거나 버리지 왜 이 고생을 하게 합니까.
모세에게도 백성들과 똑같은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갔다.
왜 나를 지도자로 부르셨습니까. 내가 언제 지도자 되고 싶다고 했습니까. 나는 못한다고 하쟎았습니까. 그 마음가운데 불신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 서라, 그리고 반석을 쳐라 물이 나온다.
그런데 모세는 물이 나오는 줄 알았지만 자기를 못다스려서 한번만 치면 물이 나올껄 두드렸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있는 성질을 다 부렸다.
물은 나왔지만 이 일로 인하여서 너는 가나안에 못들어간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니까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듣고 자기 자신에게 먹을게 없고 마실게 없을 때에 낙담되고 힘겨워하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백성들 앞에서 행패부리듯 그런 행동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에 못간다 말씀하신 것이다.
무서운 심판이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깊히깊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도 오늘 예수를 믿으며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극한 상황에서 어떤 죄를 범하는가.
나같은 죄인을 예수 믿게 하시고 구원해주시고 은혜에 감사하는데 고난과 시련이 계속되게 되면 왜 나같은걸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는가 왜 날 예수 믿게 하셨나 별별 원망의 소리를 다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우리 자신의 본성대로 살다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에 이르지 못하는 때가 참 많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 환경 때문에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가 있고 인간 노릇을 못할 때가 있고 신앙인 노릇을 못할 때가 있다.
오늘 성경에서 가인에게 말씀하신 것은 네 자신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분노, 시기 질투를 다스려라 하신 것이다.
가인이 자신을 다스렸으면 동생을 찾아가서 자네는 목축업하기도 힘든데 하나님 뜻을 헤아리고 양을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이 받으셨는데 나는 농사한 것 가지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더니 안받으셨으니 내가 좀 배워야겠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고 동생이지만 배우고 다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으면 하나님은 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 질투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있어서 동생을 때려죽인다.
감옥에 가서 전도한 분들이 쓴 책을 보니까 살인을 일삼은 사형수들, 정상을 참작해도 무기징역받은 분들,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켜야 된다고 언도받은 분들을 전도하는데 만나보면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 벌레 하나 죽일 수 없을 정도로 착하다. 그런데 어떻게 사형수가 되었나. 충동 때문이다. 자기자신을 다스리는 교육이 안되었다.
사람마다 성격이 있다.
성격이 끓어오를 때는 살인죄도 범하고 강도짓도 할 수 있다. 다스리는 교육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다스리고 하나님앞에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산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 말씀에서는 가인은 네 자신을 다스려라는 하나님 말씀에 자신을 못다스려서 동생을 때려죽이고 결국 최초 살인자가 되고 세상을 배회하는 사람이 되었다.
미국 대사 한분이 우리나라에 와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 대통령에게 인사한다.
대통령이 "있는 동안에 고생많았다, 한국인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씀해주시면 참고하겠다" 한다. 대사가 깊히 생각하더니 한국 사람의 특징 하나가 있다고 말한다. 배고픈건 참는다, 가난한 것은 숙달이 되었다 그런데 배아픈건 못참는다 한다. 결국 시기질투하는 것,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파하는 것 이게한국 사람들의 약점이라 말한다.
미국에서 형제가 목회를 하는데 동생이 형보다도 교회 목회가 더욱 부흥한다.
형이 자존심이 상한다. 어느날 스스로 동생을 시기하는 마음을 깨닫는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문제는 시기 질투이다.
교인이 목사를 존경만 하는가. 시기 질투할 때가 있다. 또 교인끼리도 시기 질투한다.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덮어주고 좋은 점은 칭찬해야 하는데 나쁜 점만 지적한다. 그것만 기억한다. 이것은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나쁜건 덮고 좋은건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근본적인 인간의 마음인데 타락하고 부패하여 시기하고 질투한다. 부부간에도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왜 따먹었나 하나님을 시기하고 질투했기 때문이다. 나도 세상을 다스리는데 하나님만큼 왜 내게는 권한이 없는가. 그런데 뱀이 와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하니까 맞다 하나님이 먹지말라 한건 내가 하나님처럼 될까봐 내게 선을 그으신거다.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도 다스려라 말씀하신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았나. 예수님이 다니시면서 백성들로부터 영광을 얻기 시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니까 시기하는 마음에서 예수님을 팔았다. 심리학자들 말이 맞는거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왜 돌아가셨나. 대제사장 가야바가 자신에게 돌아올 영광이 예수에게로 간 것을 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궁리를 한거다. 사람에게 돈을 주어 가룟유다를 시켜서 예수님을 팔게 했다.
그러니까 가인이 시기와 질투로 동생 아벨을 때려죽인거 처럼 가야바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인이면서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영원한 죄인이 되고 말았다.
우리 자신을 다스려야 할 이유이다.
분노도 다스려야 하고 시기 질투의 마음도 다스려야 한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다스려야 한다.
쳐서 복종케 한다던 사도 바울처럼 나를 쳐서 복종케 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에만 쓰여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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