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땅밟기 기도란?
업데이트 : 2010. 10. 27. 11:01
<미션라이프> '봉은사 땅밟기'동영상 하나가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는 가운데 땅밟기 기도와 선교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단기선교의 대표적 활동으로 자리잡은 땅밟기에 대한 재고 또는 폐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선교계는 이미 '땅밟기 선교'에 대한 논의가 끝났다. 성경의 자의적 해석과 선교현장 문화를 도외시하는 경향 때문에 현장 선교사들 사이에선 기피 방법이 된 것이다.
이러한 땅밟기 기도가 해외 단기선교의 현장에서 서울 강남 한복판 봉은사 마당과 대웅전으로 옮겨온 것이다. 대한민국 안에서 행해졌던 땅밟기가 이토록 거센 반대와 혐오감을 던졌다면 이슬람권이나 힌두권에 속한 나라에서 숱하게 했었을 땅밟기는 현지인들에게 어떤 파장을 줬을까.
일명 '여리고 기도'로 불리는 '땅밟기 기도'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그가 밟는 땅을 다 주시겠다"(여호수아 14:9)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땅밟기 사례는 너무 많다. 아직도 인터넷 각종 블로그와 카페에는 땅밟기 사례가 무용담처럼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 이슬람권에서 문제가 됐던 사례만 다시 정리해 보자.
지난 2006년 이란 단기선교 차 방문한 한인 선교팀이 땅밟기를 한다며 모스크 주변을 반복적으로 돌며 서성이다 현지 경찰에 붙잡혀 곤혹을 치렀다. 요르단에서는 단기팀이 시내 한복판에서 '악한 영들을 대적한다'며 통성기도와 방언기도를 해 현지인들을 당혹케 했다.
카이로 시내 중심지의 한 피자헛에는 한 무리의 한국 젊은이들이 피자를 시켜놓고 열심히 통성으로 기도를 했다. 이집트 백성들을 축복하고 악한 영들을 대적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현지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한 도시를 집중적으로 기도하며 행진했다. 학생들은 캠퍼스 곳곳을 돌면서 선포하고 찬양하고 행진한다. "이 캠퍼스를 내게 주소서....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이 땅을 내게 주소서...."
땅밟기 기도의 기저에는 악한 세력과의 영적 전쟁을 치른다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특정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영적인 어둠의 세력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다고 보고 강력한 기도로 이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콥 최바울 대표는 그의 책 '백투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돌면서 계속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행한 것뿐이다. 그런데 마지막 날 믿음으로 외쳤을 때 여리고 성이 일시에 붕괴되었다. 이처럼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 어둠의 진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고 말했다. 인터콥이 4년전 아프간에서 평화 축제를 강행하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6년전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서 열렸던 '평화행진' 역시 땅밟기에 기초한다. 수백명 또는 수천명의 기독교인들이 땅을 밟으며 기도할 때 선교의 문이 열릴 것이란 소망에서였다. 이들의 염원과 소망은 그 자체로 선하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는게 논란의 이유다.
현장 선교사들에게 땅 밟기는 한낱 이벤트일 뿐이다. 땅만 밟는 행진은 무의미하며 그 땅에서의 삶이 기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전 요르단 김동문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땅밟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은 우리와 달랐다. 곳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남의 땅에 말뚝을 박듯이 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샀다. 그리고 그곳에 장막을 쳤다. 그 장막 터 위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붓고 예배했다. 하나하나 값 주고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의 땅밟기는 이어진 것이다. '이 땅은 주님 땅'이라고 외치는 것만으로 땅의 회복은 이뤄지지 않는다. 값을 치르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방한한 풀러신학교 김세윤교수는 26일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한국교회의 영적전쟁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지적했다.
"바울이 언제 버가모교회에게 신전에 가서 뺑뺑이 돌면서 땅밟기 하라고 했나. 에테네 신전에 가서 뺑뺑이 돌았다는 말이 요한계시록 어디에 나와 있나. 땅밟기식 선교 방식이 한국교회에 들어와서 난리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으로 예수의 주권에 순종해 사랑을 베풀고 의를 행하고,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영적 전쟁이다."
진정한 의미의 땅밟기란 무엇인가. 땅밟기가 삶이며 생활이라고 할 때 8년전 서울 전농동에 세워진 다일천사병원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지역은 '청량리 588'로 지칭되는 홍등가로 매춘여성을 비롯한 노숙인과 행랑자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다일천사병원은 이곳에서 이른바 견고한 진을 파하는 어떤 기도나, 음란의 영을 대적하는 이떤 기도도 하지 않았다. 병원은 그저 그들 가운데 들어왔고 그들과 함께 살았다. 8년간 병원을 거쳐간 사람만 7만명이 넘는다. 내년 2월엔 거리에서 연고없이 죽는 사람을 위한 '임종자의 집'도 개관한다.
땅밟기의 바른 의미는 땅 자체가 아니라 그 땅의 사람들을 품는 과정이다. 땅밟기의 중심은 하나님이며 지역민들의 삶의 자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장기 선교사들이 한결같이 선교를 '더불어 사는 것'으로 정의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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