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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두려우십니까

終末이 두려우십니까

김윤덕 문화부 차장

입력 : 2014.06.04 05:37

 

장로(長老) 딸인 친구는 제 아버지만큼이나 완고한 크리스천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가요를 입에 담은 적이 없다. 로커들이 머리 풀어헤치고 헤드뱅잉 하는 장면이 나오면 "사탄들!"이라며 TV를 껐다. 사탄이란 말은 1970~80년대 주일학교에 다녔던 우리 또래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영화 '오멘' 탓이다. 666시에 태어난 주인공 데미안은 재앙을 부르는 악마의 자식이었다. 사탄을 뜻하는 표지 '666'이 뒤통수에 찍혀 있을까 봐 이 잡듯 머리카락을 헤집어봤다는 아이도 있었다.

놀랍게도 기독교의 미신적 요소는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노란 리본은 악령(惡靈)을 부르는 주술이므로 기독교인은 리본 달기에 동참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SNS를 타고 확산됐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겁주는 피켓은 지금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마주친다. '성령(聖靈) 수술'을 한다며 말기 암 환자의 환부에 손을 집어넣는 '안수집사'들도 건재하다. 기독교만의 얘기도 아니다. 지난해 결혼한 후배는 불교로 개종하라는 시어머니 때문에 못살겠다며 하소연했다. 한집안에 두 귀신이 싸우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666'의 성서적 의미를 안 건 최근이다. 서울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가 세월호 참사 직후 작심하고 시작한 '요한계시록 강해' 덕분이다. 요한계시록은 밧모 섬으로 유배 간 사도 요한이 '종말 이후'에 관해 써내려간 기록이다. 종말을 다뤘고 유난히 숫자가 많이 등장해 사이비 집단들이 '교본'으로 악용하는 책이기도 하다.

박 목사에 따르면 666은 기독교인을 극도로 핍박한 네로 황제를 지칭하려고 요한이 만들어낸 은어(隱語). 마지막 심판 날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144000'이란 것도 이단(異端)들의 단골 소재다. "14만명 안에 들고 싶지 않으냐?"고 유혹하며 우매한 사람들의 돈과 재산, 목숨마저 빼앗는다. 그러나 '144000'이란 숫자는 이스라엘 12지파(족속)12000명을 곱해서 나온 숫자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를 상징한다. "성서 어디에도 없는 종말의 날짜를 운운하며 세상을 구원할 예수인 양 행세하는 자들은 모두 가짜".

세월호 참사에서 구복(求福)신앙과 물신(物神)주의로 치달아온 한국 교회는 자유롭지 않다. 화려한 성전을 지어올리는 대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했다면, 나 혼자 구름 타고 천국 갈 게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사는 이 땅을 모두가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기적을 부르짖는 대신 성서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파하는 교회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했다면 범죄 용의자의 도주 행각을 조직적으로 돕는 반()이성적 종교 집단은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 종말(終末)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은 종교개혁가 루터가 했다. 종말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신앙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종교다.

 

E-mail : sion@chosun.com 

2년째 파킨슨병과 싸우시는 아버지는 저를 우리 둘째야라 부르시고, 14년째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남자는 ‘YD’라 부릅니다. 1 큰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며느리 뒷바라지 하시는 시어머니는 시온 에미야라 부르시고, 조선일보 줌마병법을 즐겨 읽는 독자들은 저를 줌마라고 부릅니다. 사진 보고 58년 개띠라 오해하는 분들 많지만, 70년 개띠입니다. 스웨덴 연수시절 20개월 된 딸내미 유모차 태워 유럽 10개국 여행한 것이 마흔 생애 가장 고달프고도 행복했던 추억이고, 갑상선에 암 생겨 수술대에 누웠을 때보다 아들녀석 다리 부러져 수술실로 들어갈 때 더 많이 울었던 대한민국 엄마입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닌데, 최근엔 선생님소리도 듣습니다. ‘김윤덕의 맛있는 글쓰기강의 들으러 오시는 40~80학생들과의 만남이 요즘 저의 새로운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김윤덕 문화부 차장(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