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엄숙한 노래
(브람스의 가장 위대한 마지막 가곡은 클라라의 죽음을 전후한 1896년 5월에 만들어졌다(곡을 출판한 날짜는 브람스의 63세 생일인 1896년 5월 7일이다).
브람스는 이 곡을 클라라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지만, 클라라는 이 곡을 듣지 못한 채 1896년 5월 20일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지로 가는 기차도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브람스는 클라라의 장례식이 끝난 후에야 장지에 도착한다. 클라라의 죽음은 평행선을 두고 이어져오던 두 선 중 하나가 완전히 지워진 것과 같았다. 평행선의 한쪽 선이 없어지면 다른 선도 더 이상 평행선으로 존재할 수 없다. 당시 브람스의 간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이 네 개의 가곡은 클라라를 위한, 그리고 브람스 자신을 위한 마지막 가곡인 셈이다.
브람스는 마지막 네 개 가곡의 텍스트를 모두 성서에서 찾았다. 그는 자주 성서를 인용해 성악곡을 만들었고, 그때마다 수준 높은 텍스트의 사용과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이 가곡집에서 그는 이전의 음악을 한 차원 뛰어넘는다. 그가 발췌한 텍스트와 음악은 여러모로 다른 가곡보다는 그의 걸작 《독일 레퀴엠》을 떠올리게 한다. 두 음악은 본질적으로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브람스는 《독일 레퀴엠》에서도 그랬듯이 단지 죽음의 고통과 어두움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마지막 곡에서 그는 죽은 이들의 평안과 남겨진 이들에 대한 위로와 사랑을 말한다. 죽음을 초극하는 ‘사랑’이건, 아니면 죽음과 초연한 ‘사랑’이건 죽음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가곡의 위대함은 그 어려운 목표를 극히 브람스다운 방식으로, 짙은 음영을 보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는 그만의 방식으로 해냈다는 점에 있다.)
(1곡) <사람에게 임하는 일은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Denn se gehet dem Menschen wie dem Vieh (Prediger Salomo 3:19~22) Denn es gehet dem Menschen wie dem Vieh. wie dies stirbt, so stribt er auch: und haben alle einerlei Odem: und der Menschen hat nicht mehr denn das Vieh: denn es ist alles ietel. Es fährt alles an einen Ort: es ist alles von Staub gemacht, und wird wieder zu Staub. Wer weiß, ob der Geist des Menschen aufwärts fahre. und der Odem des Viehes? unterwärts, unter die Erde fahre? Darum sahe ich, das nicht besser ist. denn daß der Mensch fröhlich sei in seier Arbeit: denn das ist sein Teil. Denn wer will ihn dahin bringen, daß er sehe, was nach ihm geschehen wird? |
사람에게 임하는 일은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전도서 3:19~22)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짐승에게도 일어나니 짐승이 죽는 것 같이 사람도 죽느니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의 호흡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도 짐승보다 더 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허무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한곳으로 가는데 모든 것은 먼지로부터 만들어 졌고 또 다시 먼지로 돌아간다 누가 아는가, 사람의 영혼이 위로 올라가는지, 그리고 동물의 호흡이 땅 밑으로 가는지를?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일을 할 때 기뻐하는 것 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것을 보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려고 다시 그들을 데려 오겠는가? |
(1.Denn es gehet dem Menschen. Andante 4/4 - Allegro 3/4) (D minor)
(「전도서」의 냉혹한 구절은 사람이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고한다. 인간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자연은 어제와 똑같은 법칙을 반복할 뿐이며, 그 섭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나아간다. 그 섭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흔히 말하는 인사를 다하고(盡人事) 천명을 기다린다(待天命)는 말이 바로 「전도서」의 이 후반부 구절과 일치한다.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 왕은 모든 형태의 환락과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만년에 그의 빛나는 생애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글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손에서 왕국이 정점에 도달했고, 동시에 몰락의 시작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특유의 경이적인 통찰력으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본 이 글을 남긴 것이다.
(2곡) <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다> (2.Ich wandte mich und sahe na alle. Andante 3/4) (G minor)
Ich wandte mich und sahe an alle (Prediger Salomo 4:1~3) Ich wandte mich und sahe an alle, die Unrecht leiden unter der Sonne; und siehe, da waren Tränen derer, die Unrecht litten und hatten keinen Tröster; und die ihnen Unrecht täten, waren zu mächtig, daß sie keinen Tröster haben konneten. Da lobte ich die Toten, die schon gestorben waren, mehr als die Lebendigen, die besser als alle beide, und des Bösen nicht inne wird, das unter der Sonne geschieht. |
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다 (전도서 4:1~3)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 보라,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 억압자들의 손에서 폭력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고인들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둘보다 더 행복하기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악한 일을 보지 않은 이라고 말하였다. |
(첫 번째 곡이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두 번째 곡은 불합리와 불평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피지배자는 그 권력 밑에서 신음한다. 이 모순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낫다는 비참한 외침이 이 곡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3곡)<죽음이여, 고통스러운 죽음이여> (3.O Tod, wie bitter bist du. Grave 3/2-4/2) (E minor)
O Tod, wie bitter bist du (Jesus Sirach 41:1~2) O tod, wie bitter bist du, wenn an dich degenkt ein Mensch, der gute Tage und genug hat und ohne Sorgen lebet: und dem wohl essen mag! O Tod, wie wohl tust du dem Dürftigen, der da schwach und alt ist, der in allen Sorgen steckt, und nichts Bessers zu hoffen noch zu erwarten hat. |
죽음이여, 고통스러운 죽음이여 (집회서 41:1~2) 오 죽음아,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자기 재산으로 편히 사는 인간에게, 아무 걱정도 없고 만사가 잘 풀리며 아직 음식을 즐길 기력이 남아 있는 인간에게 너를 기억하는 것이. 오 죽음아, 얼마나 좋은가! 너의 판결이 궁핍하고 기력이 쇠잔하며 나이를 많이 먹고 만사에 걱정 많은 인간에게, 반항적이고 참을성을 잃은 자에게. |
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zunge reget (St. Pauli an die Corinther I, Kor.13:1~3, 12~13) 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zunge redet, und hätte der Liebe nicht, so wär' ich ein tönard Erz, oder eine klingende Schelle. Und wenn ich weisssagen könnte Und wüßte alle Geheimnisse und alle Erkenntnis, und hätte allen Glauben, also daß ich versetzte, und hätte der Lieber nicht, so wäre ich nichts. Und wenn ich alle meine Habe den Arme gäbe, und liebe meinen Leib brennen; und hätte meinen Leib nicht, so wäre mir nichts nütze. Wir sehen jetzt durch einen Spigel in einem dunken Worte; Dann aber von Angesicht zu Angesichte. Jetzt erkenne ich's Stückweise, dann aber wird ich's erkennen, gleich wie ich erkennet bin. Nun aber bleibet Glaube, Hoffnung, Liebe, diese drei; Aber die Liebe ist die Größeste unter ihnen. |
내가 인간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코린토 첫째 서간 13:1~3, 12~13)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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