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유태인을 잡으러 왔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카톨릭 신자를 잡으러 왔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개신교 신자였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그런데 이젠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히틀러 나치시대를 비판한, 시인 마틴 니뮐러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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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수년전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영화 가운데 ‘로베레 장군’이란 것이 있었다. 제 2차 대전 중 독일이 점령하고 있었던 이태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유태인에 대한 박해나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의 활동과 저들의 최후 운명을 잘 알려 주었던 무시무시한 작품이었다.
이 레지스탕스 운동가 가운데 잘못돼서 억울하게 잡혀온 모리배 하나가 있었다. 바야흐로 이 모리배가 처형되려고 한다. 사형이 되든지 강제 노동으로 끌려 가게 되든지 혹은 독일에서 보내지든지 하는 것이다.
그 때 이 모리배는 신성한 다른 죄수들을 향하여서 원망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절규한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도 아닙니다. 레지스탕스 운동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고생을 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레지스탕스 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이 나타나서 이 얼빠진 모리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당신이 말한 대로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당신의 죄입니다. 왜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까? 5년 전부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몇백만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수백의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입니까?”
이때 모리배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다만 나의 적은 의무를 다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만일 모두가 제각기 의무를 다하였었다면 아마 나는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영화 ‘로베레 장군’에 나오는 이 같은 대화는 정말 인상깊은 것이었다.
수백만의 사람이 죽어가고 수백의 도시가 파괴되는 인류 역사 미증유의 대전쟁이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데 이 모리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조국과 겨레의 운명에 대해서는 木石처럼 싸늘해져서 무관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닥치는대로 한 것이다. 자기 가정을 지킨다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이 모리배는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한 것이다.
오늘 이태리의 하늘 아닌 한국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상처받고 깨어진 이 나라 이겨레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고 또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는가? 이 나라의 보다 밝은 장래를 위하여서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내 부모나 내 형제, 내 자녀보다 더 크고 높은 것, 내 집보다 더 큰 것,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오늘과 내일을 바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흔히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은 사건을 원죄라고 한다. 오랜 동안 원죄란 곧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였던 교만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원죄 곧 모든 죄의 근원은 신이 되려고 했던 인간의 자범죄(Sins of Commission)가 아니라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인간의 태만(Sins of Ommission)이라고 해석하여야 하겠다. 선악과를 따먹은 최초의 인간들은 저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담은 그 책임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여인에게 책임을 돌렸고 최초의 여인은 뱀이 따 먹으라고 해서 따먹었다고,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 원죄란 인간이 인간 이상이 되려고 한데 있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곧 자유와 책임에서 도피하여서 인간이 인간 이하가 되려고 한데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하다가 잘못하는 것이 원죄가 아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태만이 원죄였던 것이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였던 그 모리배의 모습에서 우리는 타락한 인간(Adam)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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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곳이 뉴욕이다.
방관자의 레종 데트르(生存 理由)라는 것은 뜻 밖에도 강력한 것이니까...“
-「未完의 劇」이병주著
천둥도 그럴싸 하고 인상적이지만 정작 그 일을 해 내는 것은 번개이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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