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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0 청와대 유전자

[만물상] 청와대 유전자

입력 2018.12.20 03:16
 

 

윤흥길 소설 '완장'에서 주인공 종술은 무위도식하다 저수지 감시원이 된다. 얼마 안 되는 월급에도 그 일을 맡은 것은 감시원 완장 욕심 때문이다. 도둑 낚시를 하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父子)를 적발해 두들겨 팬 그는 '좁쌀 권력'에 취해 자신을 고용한 사장에게까지 행패를 부린다. 문제가 커져 해고된 뒤에도 그는 완장 차고 매일 저수지에 나간다.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옳고 선하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청와대 대변인이 민간 사찰 의혹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표현은 시인 아니면 개그맨, 또는 완장 찬 종술이나 쓰는 것이다. 권력의 선민(選民)의식은 고대부터 있어온 것이지만, 이 정부는 유난하고 집요하다. '우리는 선하다'는 주장이 스스로 지겨운지, 이제 '우리의 선량하고 정의로움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DNA 서열에 박혀 있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정권의 집단적 '내로남불'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 수 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다른 사람도 아닌 내부자 고발로 의혹이 불거졌으니 사실관계를 따져 해명하는 게 정상 대응이다. '민간 정보 수집'과 '민간 사찰'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데 "우리 유전자에 그런 것 없다"고 답했으니, 이제 머리카락 뽑아 유전자 감식하면 되는 건가.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한국은행 국채를 발행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고 했다는 증언이 나오자 "내 머릿속에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기들끼리만 뼛속까지 정의로우니 보수 언론의 합리적 문제 제기는 무조건 '악의(惡意)'이고 친정부 매체의 지적은 '건설적 비판'이 된다.

 

▶유전자 운운하며 선민의식과 순혈주의에 빠지면 자칫 엄청난 패악을 부릴 수 있다.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워 흑인을 박해한 미국 KKK, 양친 모두 이탈리아계여야 한다는 미국 마피아, 북한 '김씨 왕조'의 백두 혈통도 그렇다. 아리안족 유전자의 우월성을 주장한 히틀러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가. 일본 극우 집단도 걸핏하면 한국과 중국 인을 공격하며 DNA를 들먹인다.

 

착한 사람은 스스로 "나 착해"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나 홀로 옳고 선하다고 하는 것이 바로 독선(獨善)이다. 독선에 빠지는 일을 경계하지 못하면 아집(我執)을 부르게 된다. 이 정부가 옳은지 그른지, 선한지 아닌지 판단은 국민 몫이다. 유전자까지 들먹이며 외쳐봐야 결국 완장 빼앗기고 고향 떠나는 종술 꼴 나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19/2018121903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