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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0 오늘 나는

누구나 애창곡이 한두곡정도는 있습니다만 내 자신은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를 즐겨 부릅니다.

유행가로는 양희은의 "아침 이슬", 가곡으로는 "동심초(同心草)"도 좋아합니다.

이런 류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배경이 아마도 지난 세월이 "험악한 세월"이었다는 야곱의 고백을 흉내낸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CCM곡으로는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는 즐겨부른다기보다는 모세가 가나안땅을 밟지 못한 것처럼 가슴아린 사건들로 어찌할 바 몰라 주의 자비하심만을 기대하는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남아있기에 용서를 비는 회개의 심령이 됩니다.

 

하면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윤동주 詩人의 서시(序詩)가 연결되어지는건 어찌할 바 모르는 상태에서도 회개의 심령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변명치도 못한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께 하소연하고픈 반항의 군더더기가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내 자신을 스스로 진단도 해봅니다.

 

윤동주 詩人의 서시(序詩)입니다.

 

死ぬ日まで空を仰い
시누 히마데 소라오 아오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一点の恥辱なきことを、
잇뗀노 치죠꾸 나끼 코또오
(한점 치욕이 없기를,)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葉あいにそよぐ風にも
하 아이니 소요구 카제니모
 (잎에 부는 바람에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わたしは心痛んだ。
와따시와 코꼬로 이딴다
(나는 괴로워했다.)

나는 괴로와했다.

 

星をうたう心で
호시오 우따우 코꼬로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
이끼또시 이께루 모노오 이또오시마네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애처로워해야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そしてわたしに与えられた道を
소시데 와따시니 아따에라레따 미찌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歩みゆかねば。
야유미 유까네바
(걸어가야겠다.)

걸어가야겠다.

 

今宵も星が風に吹き晒らされる。
코요이모 호시가 카베니 후끼 사라사레루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마침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장로님으로부터 만날 때마다 들려주시는 가슴아린 찬양곡을 들으며 태연한 듯, 무심한 듯 즐겨 듣는다고 말하면서도 오늘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시는 행사가 무얼 뜻하는지 고민하는 시간도 가집니다.

 

요즘들어 매번마다 이 찬양곡을 들으며 이 곡의 작사에 대한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는 말씀으로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심에 감사한 마음이면서도 내 본연의 반항끼가 되살아나는 기운도 느낍니다.

 

장로님이 보내신 사진 속의 글 말미에서 "새벽 4시까지 이 노래를 지어부르며"의 내용 진위 때문입니다. 작사한 배경을 뜻하는게지요.

이 찬양의 제목이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인지 "오늘 나는"인지는 모르겠으나 두가지 모두 인터넷으로 알아보아도 같은 찬양곡이 나옵니다. 인터넷 서핑으로 알아본 결과 작사가 최용덕간사님이며 제목이 "오늘 나는"임을 확인합니다.

참고로, 사진속의 "부탁드리는 말씀"은 작사가이신 최용덕간사님이 직접 말씀하신거겠지요.

하면서도, 인터넷 서핑 결과 또다른 작사의 배경이 나옵니다.

 

복음송 작사 작곡가인 최용덕 집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향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동료 집사와 아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다가 차츰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자기보다 내가 이 교회에 먼저 나왔고 내가 그를 전도했는데...

자기보다 내가 공부도 잘했고 더 많이 배웠고 내가 더 잘생겼는데 감히 나한테 대들다니...라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동료집사도 역시 마음을 닫아버렸는지 그를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몇 달이 지나자 이제는 '철이 들었다면 내가 더 들었는데 먼저 다가가야지'

'내가 먼저 맘을 열어 사과해야지'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미소를 보내고 말을 해야지'하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 친구를 만나면 그만 자존심 때문에 표정이 굳어지고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사가 먼저 용서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두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상대편 심장 소리를 느끼며 오랫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해하고 한달만에 그 친구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후 그 집사의 부인이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면서 어느 날의 일기장 한 대목을 최집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예수님 다음으로 존경하느 사람은 최용덕집사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이 교회로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했고,

나에게 용서와 사랑을 가르쳐 믿음을 강하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접한 최집사는 머리를 방망이로 얻어맞은 것 같은 영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몸부림치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친구가 손을 내밀기 전에 자기가 먼저 손 내밀고 화해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음이 가슴을 쳤습니다.

그는 자기의 친구를 생각하면서 <내가 먼저>라는 복음송을 작사하고 곡을 붙였습니다.

 

상기의 글은 어느 블로그에서 '지인의 얘기를 정리하여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복음송의 제목이 "내가 먼저"입니다.

 

찬양곡에 수록된 작사 배경이나 블로그의 글 내용이 서로 다르고 또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간에  정작 작사가 최용덕 간사님의 명확한 작사 배경에 대한 입장은 없어보입니다. 최용덕 간사님의 개인 휴대전화번호도 있지만 전화할 용기도 없습니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참고로, 두 글의 내용에서 "한 형제"와 "어떤 동료 집사"를 동일 인물로 친다면 얘기가 또 달라집니다.)

이걸 조사하고 흠집(?)을 찾아내려는 내 성격이 문제인거지요. 내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고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결국, 최용덕 간사님의 "오늘 나는" 찬양곡이 윤동주 詩人의 "서시(序詩)"와 연관되어지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심경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기분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두려움으로 숨은 아담과 하와처럼 나뭇잎으로 내 부끄러움을 가려보기도 하지만 장로님의 들려주시는 찬양이 내 심령의 아물지 못한 상처들을 찔러 다시금 가슴아린 추억들을 상기시키심으로 오늘날 험악한 세월을 살아가는 중에서도 장로님의 얼굴을 통하여 내 죄를 대속할 양의 가죽으로 입히시고 감싸주시는 하나님을 다시금 봅니다.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였다는 요셉처럼 펜데믹 시대에 선임상사로서, 최고참이면서도 아랫 직원들에게 치받히며 제삼자가 보더라도 억울하다 해야 하실 분이 웃음으로 헤쳐나가는걸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장로님과 함께 하심을 봅니다.

 

그러하니 "오늘 나는" 찬양곡의 작사 배경이 이러하니 저러하다고 장로님께 어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습니까?

 

장로님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이 찬양곡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이 다시금 고개숙여 겸손을 생각할 수 있음을 장로님께 감사해야 하는게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도리겠지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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