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일자리 부족이 로봇 탓인가
낮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진 날이었다. 뜨끈한 칼국수 생각에 서울 명동 예술극장 근처 한 식당을 찾았다. 1966년 문을 연 이 노포(老鋪)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은 명동의 터줏대감이다. 아낌없이 내주는 면사리와 차조밥, 김치통 든 종업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선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물체’를 발견했다. 칼국수 서빙 로봇이었다. 세 칸짜리 이동식 선반처럼 생긴 이 로봇은 김이 펄펄 나는 칼국수와 만두를 싣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리 학습한 경로를 따라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목표 테이블에 정확히 멈춰 섰다. 공항이나 박물관 로비에서 하릴없이 맴돌던 안내 로봇과는 달리 바빠보였다. 인간 종업원과 한 팀이 되어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이제 식당에서도 서빙 로봇과 일자리를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 온 걸까. 자동화에 따른 인간 소외를 고민하다가 관리자를 찾아 로봇 도입 경위를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요즘 식당일 하려는 사람이 없어요. 코로나 전에도 인력난이 심했지만, 지금은 더 힘들죠. 그래서 들여놨어요.” 인간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로봇이 인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할 능력이 있지만 일을 하지 않은 ‘쉬었음’ 인구는 239만8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래 최고치였다. 취업 의지는 있지만 구직 활동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도 62만8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개편된 2014년 이후 최대였다. 최악의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은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그런 ‘일자리 미스매치’의 빈틈을 로봇이 파고들고 있다.
로봇(Robot)의 어원은 노동, 노역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Robota)’. 말 그대로 인간이 하기 싫은 식당 서빙이나 고된 공장 일을 대신 해주는 기계다.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근로자 1000명당 로봇 한 대가 늘어날 경우 ‘제조업·단순 반복 직종’에서 구인 증가율이 각각 2.9%, 2.8%씩 감소한다고 한다. 로봇은 앞으로 우리 일상에 더 가까이 들어올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2 행사에 로봇개 ‘스팟’을 대동하고 나와 ‘로봇’이란 단어만 50번 가까이 언급했다. 최근 조선일보 편집국에도 미국 주식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로봇 기자(’서학개미봇’)가 입사했다.
힘든 업무를 로봇에게 미루고 인간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로봇의 진격은 사실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지 못하는 게 문제일 뿐, 근본적으로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도록 설계된 건 아니다.
'時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14 누가 한국교회에 돌을 던지나 (0) | 2020.09.16 |
---|---|
200916 짝사랑 外... (0) | 2020.09.16 |
200808 합리적 기대로 움직인 국민에게 완패한 정부 (0) | 2020.08.11 |
180811 대질 신문 (0) | 2018.08.11 |
그래도 희망은 대한민국에 있다(동아일보) (0) | 2016.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