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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180811 대질 신문

입력 2018.08.11 03:11
 

 

아마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대질 조사는 탈무드에 나오는 솔로몬왕 재판이 아닐까 싶다. 아이 엄마가 누구냐를 놓고 벌어진 유명한 재판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억에 남는 대질 조사 중 하나는 1999년 '옷 로비 사건'이었다. 수사를 맡은 서울지검 특수2부 조사실에 현직 법무장관 부인, 재벌 회장 부인, 전직 장관 부인이 들어섰다. 이 자리엔 의상디자이너 앙드레김도 있었다. 하지만 고관대작 부인 셋과 유명 디자이너가 마주한 대질 신문 장소는 곧 아수라장이 됐다. 옷 로비의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면서 나중에는 욕설까지 오갔다고 했다. 당시 현장 수사관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4인 4색 주장으로 일관해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었다"고 했다.

 

대질(對質)은 사건 당사자 간 진술이 엇갈릴 때 한자리에 모아놓고 조사하는 신문 기법이다. 물론 옷 로비 사건의 대질처럼 동일한 경험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검사들은 "그래도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말문이 막히거나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한다. 거짓말하는 쪽에 대질이 갖는 심리적 압박 효과다. 

              

택지 개발을 둘러싼 수서비리 사건 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자신에게 뇌물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검찰에서 혐의를 부인하자 대질을 자청했다고 한다. 실제 뇌물 액수가 정 회장이 검찰에 진술한 것보다 더 많기 때문에 "내 얼굴을 보면 자백을 할 수밖에 없다"고 큰소리를 쳤음 직하다. 이 말을 들은 의원들이 대질도 하기 전에 혐의를 인정하며 꼬리를 내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검사들은 거짓말로 치부를 감추려는 인간 '본능'과 진실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염치'가 부딪치는 지점에서 대질이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리라 기대한다. 되도록 대질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것을 강상죄(綱常罪)로 다스린 유교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한국 검사들은 동업자나 지인 간의 대질은 흔히 해도 가족 간 대질 조사는 되도록 안 한다고 한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 건 특검에 소환돼 드루킹과 대질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지 않고 테이블 한쪽에 나란히 앉았다고 한다. 마주 앉는 게 편치 않았을 것이다. 세 시간 넘게 진행된 대질에서 댓글조작 공모 여부를 두고 두 사람 진술은 팽팽히 맞섰다고 했다. 진실은 하나다. 댓글조작 시연을 김 지사가 봤는지, 안 봤는지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눈빛이 흔들렸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0/20180810038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