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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조선일보 사설<정의구현사제단, 왜 세상의 조롱거리 됐는지 아는가>

정의구현사제단, 왜 세상의 조롱거리 됐는지 아는가

입력 : 2013.11.26 03:14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24일 명동성당 미사 강론에서 최근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의 정치적 언동(言動)과 관련, "가톨릭 교회는 사제(司祭)가 직접 정치적·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신부들) 자신이 하느님처럼 행동하고 판단하려는 교만과 독선은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염 대주교는 "현세(現世)의 질서를 개선하는 것은 평신도의 고유 영역"이라고 했다. 천주교 신자 540만명 중 150만명이 있는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은 사실상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자리다.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고 천주교 교회법도 사제들의 교화권(敎化權)이 정치와 과학 분야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지난 몇 백 년 교회가 세속의 일에 뛰어들었을 때 국가적으로 어떤 불행을 몰고 왔고 교회 자체도 어떤 위기를 맞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의 결과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유신 독재와 군부(軍部) 쿠데타 시대에 국민이 의지하는 마음의 기둥이었다. 그는 불의(不義)와 폭력에 피해를 본 국민의 사정을 들어주는 우리 사회의 '귀'였으며,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국민을 대신했던 우리 사회의 '입'이었다. 김 추기경은 누구보다 완강하게 정권의 반(反)민주성에 맞섰지만 '정권 타도'나 '대통령 퇴진' 같은 구호는 좀체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국민 아픔을 어루만지고 넘어진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데 정성을 쏟았다. 그는 자신만이 정의의 사도(使徒)인 양 비치는 오만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소속 박창신 신부는 지난 22일 군산 시국 미사에서 "NLL(북방한계선)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쏴야죠. 그게 연평도 포격"이라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전국 대표 나승근 신부는 "성령(聖靈)의 바람이 전주로부터 시작해 신나게 몰아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 못 하는 사람들 입을 대신하고 들어주는 이 없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가 돼야 할 사제의 신분과 동떨어진 행동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의구현사제단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밀양 송전탑 건립 반대에 이르기까지 세속의 모든 현안에 개입해 갈등을 증폭하는 걸 사명처럼 여겨왔다. 무슨 정치 컨설턴트라도 되는 양 특정 정파의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 모임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땅을 헛딛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쌓았던 역사적 공로를 다 까먹고 이제는 사회의 조롱을 받는 빈축 대상이 돼 버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집단마다 이해(利害)가 서로 갈리고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사회·경제적 현안을 뚫어보지 못하고 어디서나 흑백(黑白)의 도끼를 휘둘러 자신들이 세상일에 얼마나 무지(無知)한가를 스스로 폭로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