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ference

유대인 살린 '엘살바도르 리스트"

유대인 살린 '엘살바도르 리스트'
  • 김신영 기자

입력 : 2010.03.01 02:24

만텔로 서기관

駐스위스 엘살바도르대사관 유대인 일등서기관 만텔로,
아우슈비츠 수감자들 구하려 "엘살바도르 국민이다"
신분증 위조, 수천명 구출

미국 뉴욕에 사는 유대인 이나 폴락(Polak·87)씨는 최근 세상을 뜬 어머니의 짐을 정리하다가 '1944년 2월 6일'이라는 날짜가 적힌 낡은 종잇조각을 발견했다. 폴락씨 자매와 부모님의 사진이 붙은 누런 종이에는 스위스 주재 엘살바도르 대사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이주해온 폴락씨 가족과 중미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라니,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폴락씨는 28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 "최근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 한 장의 종이가 우리 가족의 목숨을 구했음을 알게 됐다. 이 '생명줄'을 만든 사람은 엘살바도르 대사관서 일하던 한 용감한 헝가리인 조지 만텔로(Mantello)였다"고 말했다.

AP통신은 28일 "본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엘살바도르 신분증을 대량 발급해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5000명의 목숨을 구한 만텔로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헝가리출신 유대인인 만텔로는 1939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엘살바도르 대사관에서 일등서기관으로 일했다. 오랜 친구이자 엘살바도르 총영사였던 호세 아르투로 카스텔라노스(Castellanos)의 도움으로 유대인식 이름 '맨델(Mandel)'을 스페인식 이름 '만텔로'로 바꾼 상태였다.

 

 

언제 자신의 유대인 신분을 들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만텔로는 나치 수용소에 갇혀 죽음의 문턱에 가있는 유대인들을 위한 '서류 작업'에 착수했다. 수감된 유대인들의 사진을 붙이고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넣은 후 대사관 직인을 찍었다. 카스텔라노스 총영사의 묵인 아래, 만텔로는 엘살바도르 국민이라고 적은 증명서를 아우슈비츠(폴란드), 베르겐-벨젠(독일) 등의 나치 수용소로 발송하기 시작했다. 본국 정부에는 알리지 않았다.

AP통신은 "독일 정부는 전쟁과 무관한 나라의 국적을 지닌 이들을 중립국, 혹은 덜 혹독한 수용소로 보내고 수용소에서도 죄수 복장 대신 일상복을 입도록 허용했다. 선(線)의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리던 시기에 만텔로의 신분증은 유대인들에게 생명줄과 다름없었다"고 보도했다. 1942년부터 엘살바도르가 연합군 편에 서기로 선언한 1944년까지 만텔로가 만들어 나치 수용소들로 보낸 엘살바도르 신분증명서는 5000개에 육박한다.

전쟁이 끝난 후 만텔로도, 그가 엘살바도르 신분증을 찍어내도록 묵인한 카스텔라노스도 입을 다물었다. 미국 워싱턴DC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사진자료실장 주디스 코헨(Cohen)은 AP통신에 "만텔로는 역사책에 '각주'같이 미미한 존재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스위스 제네바(Geneva)의 한 건물 지하 창고에서 만텔로가 발급한 신분증 사본 1000개가 발견되고, 지난해 만텔로의 아들이 이를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역사학자들 사이에 이 '용감한 헝가리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명의 목숨을 구하는 자가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라는 유대인 속담처럼, 5000개의 신분증이 정확히 몇 명을 죽음에서 빼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