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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현 정권을 '독재'라 하는 그분께(김주성)

[시론] 현 정권을 '독재'라 하는 그분께

  •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정치철학
  • 입력 : 2009.06.17 22:41
민주국가인 현대 한국을 독재국가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모두 들고 일어나자고 선동하는 분도 있다. 왜 민주국가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독재와 맞닿아 있는 정치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다수가 지배하는 정치제도이다. 다수가 소수의 의견과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하면, 그것이 바로 다수독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 또는 소수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하면, 일인독재 또는 소수독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 까닭은 일인의 지배체제인 군주정이나 소수의 지배체제인 귀족정 또는 다수의 지배체제인 민주정이 모두 인치제도(人治制度)인 까닭이다. 인치제도에서는 권력이 집중되면 곧바로 독재가 시작되기 쉽다. 지배자가 막대한 권력을 갖게 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의 유혹은 일인이든 소수이든 또는 다수이든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뿌리치기 어렵다.

인치제도의 폭력성에서 벗어나고자 현대에는 정치권력을 셋으로 분할하여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삼권분립의 대의민주주의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독재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대의민주주의는 입헌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다수라 할지라도 헌법을 넘어설 수 없다. 헌법에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다수라 할지라도 소수의 권리를 무시할 수 없다. 혹시라도 소수의 권리가 무시되면 사법부는 소송재판에서 무시된 권리를 회복시켜준다.

나아가 헌법에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이 서로 견제를 하도록 되어있다. 행정부가 독주하려 해도 입법부의 견제를 물리칠 수 없다. 행정부가 요구하는 법이 입법부에서 무사통과되기는 어렵다. 또한 입법부가 전횡하려 해도 사법부의 견제를 넘어설 수 없다. 사법부는 정당하지 못한 법률을 위헌으로 판결내린다. 위헌판결이 나면 그 법은 즉시 효력을 잃는다.

입헌체제로 운영되는 한,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원천적으로 독재가 불가능하다. 만일 독재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입헌체제가 무너졌을 때를 말한다. 삼권분립이 무너져서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깨어졌을 때 독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행정부가 비대해져서 입법부와 사법부가 무력화되면 행정수반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이때에는 행정수반이 국민의 기본권을 자의적으로 제한해도 시녀화된 입법부와 사법부는 아무런 견제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로 운영되는 국가가 독재로 빠졌다는 판단을 하려면, 맨 먼저 그 나라의 입헌체제가 무너졌는지, 더 구체적으로는 삼권분립체제가 무너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동안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과잉진압문제는 모두 사법부에 소송청구가 되어있다. 사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최종판단을 하고 있는데도, 사법부의 독립성이 무너졌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6월 국회를 앞두고 야당의 서슬퍼런 전투의지가 치솟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 입법부의 견제력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삼권분립에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하거나 심지어 파쇼라고 폭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현 정권이 실제로 독재나 파쇼라면, 누구도 이러한 말을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현 정권이 독재나 파쇼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독재나 파쇼라는 말들은 모두 거짓된 헛말이거나, 우리의 입헌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선동적인 폭언일 것이다. 요즈음 조성되고 있는 국가위기상황에서 이런 헛말이나 폭언을 귀따갑게 듣고 있노라면 나라의 장래가 두렵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