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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교수 칼럼

614 종교가 없는 나라

-종교가 없는 나라- (614)

 

오늘부터 각자가 가슴 깊이 간직할 만한 시나 글을 한 구절 적어 놓기로 하였습니다.

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
The last of life for which the first was made.

영국 시인 Robert Browning은 낙천적인 시인이어서 이렇게 읊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월 따라 함께 늙어갑시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도 오지 않았으니,
인생의 마지막 그걸 위하여, 인생의 처음이 만들어 진 것.

지난 1월 2일 10시 경 일본 궁성의 동쪽 뜰에는 여러 만 명의 일본인이 운집하여 천황 아끼히도 내외와 황족들에게 멀리서 인사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정초에 실시되는 이 하례식이 TV로 방영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 땅 신촌의 골짜기에서도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천황의 인사는 매우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황국신민’들은 감동과 감격을 금치 못하고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노인들만이 추위를 무릅쓰고 그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도 상당수 눈에 뜨였으므로 이 행사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명치유신 뒤에 만들어진 일본 헌법에는 ‘천황은 신성하여 불가침이다’라는 한 마디가 분명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 뒤에 일본 점령군 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은 인간의 ‘신격화’를 용납할 수 없어서, 그 조항은 일본 헌법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의 가슴 속에서 천황은 변함없이 ‘신성불가침’임이 확실한 듯합니다.

‘신’이 아닌 ‘인간’을 ‘신’으로 모시고 사는 일본인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종교는 없습니다. 체면상 또는 교양으로만 지니는 종교 - 신사참배하고 그 길로 바로 옆에 있는 절에 들러 합장하고 기도하는 일본인, 크리스마스에는 크게 파티 하는 일본인!

그래서 일본인은 어떤 한 종교에 깊이 파고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특정한 종교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종교에 대해서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한 약점 하나는 국민의 도덕생활을 뒷받침할 힘을 구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제 힘만 가지고 도덕적인 삶을 끝까지 살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종교인 종교지도자들이 크게 각성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태평양의 새 시대의 주역이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국민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한국인을 전 세계에서 가장 정직한 국민이 되게 하고, 세계의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이 풍부한 국민이 돼야 하는데 그 책임이 종교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