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사람
140914 조원형목사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26:30~35)
우리나라는 교회를 식별할 때에 십자가 모양을 본다.
로마 카톨릭 천주교는 십자가에 둥근 원 하나를 두른다. 전도관은 십자가를 없애고 비둘기를 앉혀 놓는다.
이제는 위장된 교회가 많아서 정통 교회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유럽에는 십자가 모양이 없는 교회가 있다. 그러나 잘못된 교회는 아니다. 십자가 대신에 숫탉을 올려놓았다. 그 이유는 옛날 시계가 없어서 깨운다는 의미로 숫탉을 생각했다. 영혼도 깨우고 절망, 좌절도 깨운다. 둘째는 본문 34절처럼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때문이다. 결국 베드로가 부인하게 된다.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한다.그리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고 운다. 이로부터 초대교회의 새벽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종탑위에 숫탉을 올려놓았다.
그 이전에 예수님이 성만찬을 하신다.
모두 부인하고 도망하되 혼자 십자가를 지리라 예언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되 모두가 버릴지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노라 말한다. 당시의 그 마음이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마음가짐이었겠지만 자시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다.
KBI대학원 이성주박사의 "전략적 리더십"이다.
실행이 없는 비전은 꿈이고 허구이며 비전이 없는 실행은 시간만 죽인다. 비전이 있고 실행이 있어야 변화가 온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베드로가 자신을 모른다. 만용이다.
무식한 맹세가 사사기서에도 나온다.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되 하나님이 암몬을 붙이셔서 승리하고 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 바치겠다 한다. 결국 승리후에 축하하러 나오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번제로 드린다. 실지 통채로 불에 태워 바치는 번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전에 평생 독신으로 봉사케 했는지는 분분하다. 신앙도 좋고 효심도 좋지만 아버지가 맹세한대로 실행하시라 말하는 딸이다.
자신만만한 인생이라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로도 말고, 땅으로도 말고, 예루살렘으로도 말고 머리털로도 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 나약함, 비겁함, 다혈질인 것을 모른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깨달은 뒤에야 회개하게 된다.
급발진 사고가 차량에 일어난다. 브레이크도 안된다. 이대 시동을 끄면 된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으로 다스리는가. 신앙과 기도로, 용기와 믿음으로 나서야 한다. 자기자신에 대하여 너무나도 모른다. 자신은 의라고 생각하는데 불의인 경우가 많고 주변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상처를 준다. 3년반동안 예수님을 다라다녔던 베드로도 자기자신을 모른다.
어느 철학 교수가 강의 첫시간에 묻는다.
자판기에 300원을 넣고 커피를 뽑아 마시려고 하는데 300원이 다시 나왔다. 학생은 어떻게 하겠는가. 300원을 그대로 놔두겠다는 학생도 있고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학생도 있다. 정직한 학생이라고 칭찬한다. 교수인 나는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물으니 교수님도 둘중 하나일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잘못 알았다. 자신은 커피를 다시 하나 더 뽑아 먹겠다고 한다. 철학하는 교수인 나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으며 여기서부터 철학은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저주하면서 세번씩이나 거듭했다.
자신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임을 모른다. 자신만은 다르리라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바리새인을 외식자, 형식자라 하지만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바리새인보다도 더 심하다. 오히려 바리새인에게 지적받을 것이다.
어느 신학생이 학업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려운 형편에 신학을 하는데 어느 분이 딱한 사정을 듣고 등록금을 대준다. 이에 친구에게 말하길 등록금을 대줄 때보다도 옛날이 그립다고 말한다. 그 때는 10분이 아까왔는데 지금은 TV앞에서 껄껄 웃는 내 모습에 놀랐다는 것이다. 어려운 그 때가 하나님앞에 든든히 서있는 때였다는 것이다.
엄격한 목사님이 계셨다.
주일 거룩한 날인데 어떻게 물건을 사고 밥을 사먹느냐. 차라리 금식을 하라는 것이다. 옛날엔 그랬다. 주일날 절대로 커피를 사먹거나 버스를 타서도 안된다고 했다. 정히 배가 고파 교회 일을 못하면 어떡하나 했더니 밥은 오늘 먹고 돈은 내일 주면 되지 않느냐한다. 하지만 차라리 오늘 먹고 오늘 돈내고 오늘 회개하라. 매번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외식주의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마태복음 19:7~8절의 예이다. 율법을 내세우고 법을 내세우기 전에 내 자신을 낮추라는 것이다.
"핀"이라는 소책자가 있다.
연못에 개구리가 산다. 연못이 메말라서 새로운 연못을 찾는다. 그 엿못이 메말랐다면 근방의 연못도 메말랐을 것이다. 부엉이를 멘토로 두었다. 밤에만 이동하는 부엉이인지라 개구리 혼자 찾아 헤매니 부엉이가 말하길 연속된 실패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한다. 둘다 모르는 무식자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넘어지고 절망하지만 수습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늘 겸손히 노력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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