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의 악수
150524 조원형목사님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6~10)
역사가들이 인류역사상 가장 참옥한 참상의 장소를 지목하면 나치 독일 치하의 아우츄비츄를 말한다.
600만 유대인이 나치 하에서 죽음을 당했다. 우리의 6.25전쟁 때 민간인까지 합해도 사망자가 300여만이 안되는데 아우츄비츄에서는 600만명의 비극적 참상이 있었다. 이들을 죽이기 위해 계획하고 주도하고 실행한 자는 한 사람이었다. 그가 아이히만이다. 히틀러 나치의 중요 업무를 맡았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히틀러 잔당 재판에서 아이히만이 법정에 섰다. 증인으로 유대인 디무르가 나왔다. 그가 아이히만을 보고는 악 소리를 지르고 기절했다. 의사가 조치하여 정신을 회복하고 다시 증인으로 섰는데 과거의 악몽이 생각나서 그런가 했더니 아니라 한다. 분노 때문인가. 그래도 아니라 한다. 그러면 왜 아이히만을 보고는 기절했는가 물으니 달리 대답한다. 아이히만을 다시 보니 맞기는 맞는데 보통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600만을 죽이는데 주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나도 저 사람처럼 분노나 악의를 품으면 나도 저지를 수 있겠구나. 내 자신에게도 악한 마음이 있음에 놀랬다고 한다. 누구든지 특별한 이가 있는게 아니라 분노, 나쁜 마음을 숨기고 살다가 폭발하면 악의 도구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신앙인이지만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
마태복음 16장23절의 충격적 사건이 나온다.
예수님이 십자가상 죽음을 예언하시는데 베드로는 화를 내며 그런 소리 마시라 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리 마옵소서 만류한다. 이로서 예수님을 화나시게 한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말씀하신다. 바로 그 직전 16장 13절에서는 세상 사람들은 나를 뭐라 하느냐 물으셨다. 엘리야, 예레미야라 대답한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뭐라 하느냐 물으시니 베드로가 대답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말한다. 이에 예수님은 이를 알게 하신 이가 성령님이심을 밝히신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신앙고백과 함께 칭찬받고 조금 지난 직후 십자가상 예언의 말씀에 책망을 듣는 베드로의 장면이 나온다. 왜 그랬을까.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극찬을 들었을지라도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된 것처럼 착각했다. 병든 이, 굶주린 이를 도우신 예수님이시지만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설사 예수님보다도 더 선한 일을 했을지라도 우리는 죄인인데 예수님과 같은 동일시하는 착각을 하는 베드로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다는 말씀을 왜 했을까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리 마옵소서 반박한 것은 베드로의 교만 때문이다.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른 자신과 동료들은 뭐가 되겠습니까 이러한 교만에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착각을 나무라신 것이다.
우리는 죄인중의 죄인이다.
우리가 선을 행했다고 하여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교만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받는다. 교회에서도 남들보다 선한 일을 행한다고 생각하면 교만이요 책망받게 된다. 야고보 게바 바나바 등은 초대 교회의 중심인물들이다. 사도 바울이 그들과 교제의 악수를 나누었다. 교제 화해의 악수를 나누기 전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 지도자들과는 간격이 있었다. 의견 차이도 컸고 분쟁 소지도 있었다. 베드로는 어부이며 3년반동안 예수님을 따랐기에 지성과 깊은 견해 지식은 없었다. 한편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했지만 누가 그를 믿어주겠는가. 예루살렘 성도들이나 지도자들이 믿어줄 리 없었다. 그러나 성경과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졌다. 하지만 예수님을 핍박하면서 스데반 순교의 주도자이면서도 사도 바울 이전의 사울을 받아줄 리는 만무했다. 이때 아나니아가 고민중인 청년 사울에게 복음을 전한다. 하면서도 경계심을 가진 유대인 지도자들과 회개한 청년 사울은 가까울 리 없었다.
하면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이방인들과 식사하면서 사울도 함께 있었는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나타나자 숨어버렸다. 그 때에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꾸짖는다.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 이방인과 함께 계셨는데 베드로와 바나바는 왜 피하는가. 견해차가 컸다. 바나바가 고민하는 사울을 찾아보고 복음을 전하는데 중간 역할을 하고 마음을 함께 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교회들과 교제의 악수를 나누고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했다.
교제의 악수. 이는 오랜 전쟁중에 아까운 시간과 군사만 죽이겠다 하여 백기를 들고 화해의 악수를 청하기 위해 상대방 장수에게 나가서 악수를 함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처럼 베드로와 사울이 화해한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처음엔 충돌이 있었지만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화해하는 것처럼 교제의 악수를 나누고 성령이 가르치시는 겸손을 나눈다. 자신의 생각과 처지보다는 차원높은 신앙으로 교회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각각 다르게 살아온 과거의 관습이 베어 있지만 충돌을 피하고 한 방향 한 뜻을 바라보고 협력하여 살아간다. 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겸손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재산이 9천억원이다.
방송인으로서 돈을 벌었는데 자선사업도 많이 했다. 성공 비결로서 겸손과 진실이라 말한다. 방송중 한 아가씨가 강간당했다고 울면서 절망하니 나는 9살에 처음 강간을 당하고 이후 5년동안 5번이나 당했다고 말한다. 생방송중이어서 세상이 놀랐다. 그 아가씨가 위로받고 새 삶을 얻었다. 이를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윈프리는 말한다. 하면서 자신의 토크쇼는 목회활동이라 말한다. 자신은 이를 원천으로 방송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유대 지도자들이 나중된 사울과 하나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으로 화해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겸손으로, 낮아짐으로 쓰임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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