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사랑
150510 조원형목사님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6~8)
미국 자동차 경주대회중 나스카 대회가 있다. 1948년 미국 동부에서 시작된 지역적 경주대회인데 일반 자동차를 개조해서 시작되었으며 세계적인 대회로 변모했다. 이 대회에서 데럴 월트릭 선수는 전설적 인물이었다. 챔피언쉽에서 세번이나 영광을 차지했고 84번이나 우승을 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웰트릭 선수가 최초로 일천만달러 수입을 기록했다.
그는 캔터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엄청난 부와 영광을 얻었다. 하면서도 독선적이고 고집통이며 못된 인간이란 비평도 받았는데 자신의 성품을 잃어버렸음에도 대회에서는 우승했다. 그러던 중 1983년 대회 도중 큰 사고를 당한다. 자동차가 4바퀴나 구르고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의식을 잃고 두주간 후에야 깨어난다. 이렇게 죽는가 보다 하고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나니 아내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그 동안 교회 나가자는 아내를 무시하고 신앙을 거절했는데 대형 사고후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를 보고 감명받는다. 이후 그는 기도와 헌신으로 확증하고 2015년 올해 2월 15일에 백악관에서 조찬기도회때에 간증하기도 했다. 부인이나 어머니가 기도한다고 할 때 정신차려야 한다고 웃기기도 했다. 은퇴후 신앙 간증을 한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나 내 부모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나를 깨닫는다.
본문 6~8절에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또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심을 확증하셨다. 의인을 위해 죽는 이가 혹 있을지라도 죄인을 위해 죽는 이가 있겠는가. 끝까지 깨닫지 못해도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포기치 않으신다.
자식은 부모앞에 언제나 죄인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기쁨보다는 근심, 걱정을 끼치는 것이 더 많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어거스트"에 나오는 한 내용이다.
한 어머니가 아들을 해산했는데 이상한 노인이 나타나 축하한다. 하면서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는가 묻는다. 이에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심지어 새로 만난 사람에게서도 사랑을 받는데 성장하면서 저잘난 생각에 양보정신도 없고 못된 인간이 되어간다. 사랑에 대한 응답을 못하는 아들을 보고 마음을 졸인다. 다시 옛노인이 나타나 안부를 묻는다. 이제는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할 줄 아는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대접받는 것보다는 대접받을 줄 아는 이가 되어야 한다. 나를 대접하는 이에 대한 대접도 중요하지만 나를 해치고자 하는 이에게도 대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영광가리우고 부모에게도 아픔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 우리가 연약할 때에 사랑받기만 했지 사랑할 줄 모르고 은혜를 모르는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다. 결혼식 주례에서도 남을 대접하는 일, 선대하는 일을 하라는 말로 주례사를 주로 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결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요 복음의 시작이다. 용서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성숙한 신앙인이다.
사랑을 베풀면 베푼만큼 응답이 있으면 행복하다.
하면서도 소용없는 일이 될 때는 힘이 든다. 하지만 그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요 부모님의 사랑이다. 생명이 있어 기식하는 모든 것, 한올의 씨앗조차도 땅이 품어야 씨앗이 싹튼다. 맹수라도 그 어미가 새끼를 키우기에 성장할 수 있다.
인간은 짐승보다도 약하고 들풀보다도 약하다. 인간이 성장함에 있어 이보다 더딘 존재가 없다. 이것이 약점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리고 부모님은 나를 위한 사랑을 포기치 않으셨다. 효도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옛날에는 기술, 지식보다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채용했다. 요한복음 3 :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한다.
부모의 은혜를 알았으면 효도가 정상인데 사도바울의 말은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겠느냐' 말씀한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원망, 불평으로 끝내겠느냐, 교회 처음 나올 때에는 모든 것이 감사했는데 세월이 가면서 사랑에 대하여 무뎌지고 반대현상이 생겨난다. 교회에 공로자로 추락한다. 사랑,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는 것처럼 사랑이 식고 원칙, 법을 따지고 야단치는 것만 남는다. 그 때문에 예수 오래 믿는 사람들을 피한다.
하나님 공경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겸손이다. 낮아져야 한다.
손주를 귀여워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긴다. 초신자에게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데 원칙을 가지고 나와 트집잡고 따진다.
세월이 가면서 더욱 감사하는 것이 신앙의 정도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마른가지임을 알고 회개해야 한다.
사랑에는 물리적 사랑이 있다.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입는다. 어린아이로부터 죽을 때까지 얼마나 먹고 얼마나 입겠는가. 몇톤분의 트럭에 실리는지 계산해 볼만 하다. 둘째는 정신적 사랑이다. 식물이 자라는데 거름이 필요한데 거름은 먼저된 식물이 희생된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에서 어머니의 가슴에 묻은 근심 걱정을 입고 산다. 세째는 영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2007년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내용이다.
아내가 죽는다. 남편 혼자서 자식을 키우는데 계모를 들인다. 자식들이 엄마가 아닌데 왜 엄마라 불러야 하는가 반항한다. 그 처는 마음 고생을 심히 한다. 계모의 헌신적 모습에 관객들이 눈물을 흘린다. 계모든 아닌 사람이든지 간에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오늘 타락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심리학자들의 말이다. 교육학적으로 보아 사랑을 모를 때 사랑을 받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어린아이때 받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 말한다. 임금님보다도 더 높은 사랑을 어린아이들은 모른다. 그 어린아이는 다섯살 이후의 부모님 사랑을 기억하지 그 이전의 사랑은 모른다.
하나님앞에 죄인인 것을 알고 사는 것 자체, 부모님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자식은 원칙을 따지고 법을 따지고 부모를 업수이 여긴다.
사랑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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