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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중요성

말의 중요성

 

2015. 5. 28. (매일경제신문)                                                                                                                                         임정혁 법무연수원장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철학과 사고방식, 예절과 배려심이 담겨 있다. 말은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전달효과는 물론 사람 기분을 좌우한다.

 

얼마 전 한강변 산책길에서 재미있는 안내 문구가 적힌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물고기 안전지대'. 처음엔 무슨 뜻인지 잘 몰라 가까이 가서 보니 작은 글씨로 낚시와 수영을 금지한다는 내용과 위반 시 벌칙도 적혀 있었다. 단순히 낚시· 수영 금지라고 하는 것보다 자연과 환경 보호의 뜻이 내포된 기발하고 예쁜 표현 아닌가! 어느 식당에서는 '100세 이상 흡연 가능'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금연'이라는 상투적이고 규제적인 단어보다 얼마나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표현인가. 예전에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표 파는 곳, 표 받는 곳'이라 했지만 지금은 '표 사는 곳, 표 내는 곳'으로 바뀌었다. 공급자 위주 표현에서 소비자 위주로 전환된 것이다.

 

검찰청에 다녀간 사건 관계인 중에 감사 편지를 보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감사 편지를 보내오는 민원인은 사건의 처분 결과보다 검사나 검찰 직원들이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나 말 등 사건을 대하는 정성에 감사하는 경우가 많다. 민원실에서 통상 하는 첫마디인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말 앞에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를 받고는 감격하여 감사 편지를 보내온 민원인도 있었다. 최근에는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5년째 수감 중인 재소자가 구속기소 당시 검사가 해준 말과 선물로 준 책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재활의지를 다짐하고 있다며 검사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 오기도 했다. 이들 사례는 수사 결론도 중요하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말이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준다.

 

'사법은 정의로워야 할 뿐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fair but also be seen fair)'는 법률 격언이 있다. 당사자 승복이나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사건 처리의 최종 결과가 중요하다. 하지만 진행 과정 절차나 용어 선택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