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文益煥)목사(940118 ~180601)는 제3~6공화국 군사정권과 맞서 투쟁한 재야 민주·통일운동의 지도자로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사입니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민주화가 되지 않는다는 진보적 기독교인들의 신념에 따라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사회운동가로서 감리교인 이현주목사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개신교측 번역자로 참여한 성서학자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장로회는 1953년에 기독교장로회를 설립하며 예수교장로회에서 갈라졌는데 기독교장로회는 성경을 진보적으로 해석하여 보수적인 교단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군사독재시절에 해방신학이란 이론을 받아들여서 사회 구원을 많이 외쳤고 반정부 데모에 앞장섰던 교단이기도 합니다.
문익환목사가 무단 방북으로 한때 시끄러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만 기독교장로회 소속인 한신대학교 출신일 뿐만이 아니라 북간도 용정 출신이라는 것도 직간접으로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십자가"가 있는 '교회'에서 문익환의 아버지가 목사로, 윤동주의 할아버지가 장로일을 보았고 2017년생 윤동주와 2018년생 문익환 두 사람 모두 옛날 북간도라 불리었던 용정에서 태어나 함께 학교를 다닌 죽마고우입니다. 마침 용정시의 한 박물관에 있는 족보를 사진으로 담아왔기에 짧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참고>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사람은 자라난 배경과 환경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오른쪽사진은 연변 연길거리의 서시장입니다.
근래 들어 백두산 혈통의 백마를 탄 김정은 사진과 뉴스가 등장합니다만 이를 보며 알프스산을 넘는 나폴레옹의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실지 나폴레옹이 알프스산을 넘을 때엔 눈바람으로 인해 말타기는 고사하고라도 앞을 못보며 걷는 패잔병의 모습이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그림을 흉내낸 김정은의 발상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물론 조선중앙통신의 사진입니다.
이왕에 사진으로 찍을꺼면 복장도 좀 백두혈통을 연상시키는 멋나는 가운을 입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라나온 배경은 인민위에 군림하는 군주로서 양심보다도 그 위상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나폴레옹의 알프스 등반은 그림이지만 김정은 자신은 실지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넘었다는 뉴우스로 인민들에게 전파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백두산을 기점으로 동쪽으로는 두만강, 서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른다는 것은 학창시절 지리시간에 배웠습니다만 백두산이 반으로 쪼개져서 북쪽은 중국 소속, 남쪽은 북한 소속임을 얼마지나지 않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래 사진들은 두만강 사진과 함께 백두산 사진입니다. 오늘의 사진들은 바로 엊그제 백두산을 다녀왔다는 지인에게서 받은 사진들입니다. 두만강 건너편은 당연히 북한땅입니다. 초소 앞에 나와 팔다리를 벌린채 햇살 아래 쉬고 있는 모습과 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사람도 보았다네요.
따라서 중국쪽인 북측에서 본 백두산 천지이며 북한의 김정은 백마탄 사진은 남측의 백두산에서 찍었겠지요마는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백두산 천지의 반대편 사진은 그 옛날 발해의 대조영이 관할했던 만주 벌판입니다.
맑은 날 천지를 보는 것도 3대를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인의 객담입니다. 한때 만주에서 개장수했다는 분도 있지요.
동쪽에선 독도를 가지고 일본땅이라 우기고, 북쪽으로는 백두산이 반으로 쪼개져 있고, 서쪽으로는 무인도였고 우리가 지켜보았다고는 하나 무관심했던 함박도가 북한에서 레이더기지를 세우며 북한에 빼앗긴 셈이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 글을 올린 190930자 횡설수설에서 말한 "힘의 논리"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닌거 같습니다만...
비일비재한 일들이 많겠지만 동남아쪽의 푸꾸옥섬을 거론해 봅니다.
베트남 남서쪽에 위치하며 푸궉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섬은 언뜻 보면 캄보디아령으로 보일 정도로 캄보디아에 더 가깝고 또한 캄보디아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베트남보다도 힘이 약하여 그 주장을 관철치 못하고 있다는 말도 듣습니다. 그래도 베트남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으므로 캄보디아로 돌아가기는 요원하겠지요.
베트남의 제주도라는 푸꾸옥 섬의 면적은 589 km2로서 강화도(305.75㎢)의 약2배, 제주도(1,845.88㎢)의 약1/3정도이며, 인구는 2012년 기준으로 약 103,000명입니다. 참고로 강화도의 인구는 2010년 기준 61,021명이며 제주도는 2018년 기준 66만7,191명입니다.
월남전이 종료된 직후 한 때는 베트남인, 베트콩인, 월남전 참전용사와 함께 직장생활을 한 경험도 있습니다만 베트남인과 베트콩인의 지역감정이 쉽사리 풀리지는 않음도 느낀 바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제는 명실상부한 통일국가로서 캄보디아보다도 국력이 강하다는 것은 인지의 사실입니다.
힘의 논리에 의해 통일하면 강해지고 강해진 만큼 부유해지고 부유해진 만큼 여유로워지고...참 좋습니다.
하면서도, 통일로 인하여 힘이 세지고 좋아지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힘이 세어진 베트남의 지역감정과 국민 정서도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1990년 10월 3일자 독일이 통합된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지역감정적 문제점이 많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한국의 미래를 볼 때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겁니다만 힘의 논리와 함께 "통일하느냐 통일되느냐"라는 과정조차도 생각해 보아야 할 처지입니다.
힘의 논리에 의하여 힘이 세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과정으로서의 사람의 처지입니다. 환경과 처지가 사람의 사상까지 좌우하는걸 목격하기 때문이지요.
요즈음 경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천 지역만 보아도 은퇴 노인들이 많은 주안역 주변보다도 젊은 유아들이 많은 청라, 검단 등의 신도시(재생도시)에서는 가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외식부터 줄이므로 대형 음식점들과 유명 맛집들조차 폐업하고 구조조정하는 것을 비일비재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주말 아침에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서 시정을 건의했던 정무부시장과 구청장 이하 정치인들도 잘 알고 있겠지요. 주말에도 몰려다니며 환경과 처지를 열심히 만들어내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있는겁니다.
내 코가 석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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