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종플루, 왜 '기회'인가
- 입력 : 2009.11.02 23:09
- ▲ 정영진 대한병원협회 홍보이사·강남병원 원장
신종플루로 인하여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모든 국가의 이목과 역량이 집중된 것처럼 보인다. 매스컴 헤드라인 뉴스는 연일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차지하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과 불안의 정도가 얼마인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의료인의 한 사람인 필자는 과연 이러한 상황이 정당하고 합리적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매일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과 정책 당국의 발표는 한낱 앵무새같이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만 되풀이할 뿐 새로운 대책이나 보완책은 없다. 과연 이 상황에서 이 정도밖에 대응할 수 없는가. 보건 당국이나 언론 그리고 의료계에 대하여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감히 이번 신종플루는 대한민국에 아주 큰 기회와 행운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신종플루는 병의 전염력은 크지만 사망률은 낮다. 전에 유행하였던 사스나 조류독감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구분된다. 진료현장인 병원 내에서도 의료진 사이에 대응과 감염 위험을 감지하는 정도에서 차이를 보이고, 특히 의사들은 크게 심각성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나 정책 당국에서는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킬 게 아니라 현재까지의 집단 감염에 대해 정책적인 대응부족과 개선해야 될 부분, 특히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의료산업화와 의료관광에 대해 차분히 검토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술적인 대응'보다는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신종플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안정적이며 첨단적인 의료 시스템을 이웃 나라에 입증할 수도 있다.
필자는 작년에 수도 통합병원의 격리 병동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병실 의료진의 감염을 막기 위해 동선 반대편 쪽에 음압(陰壓)을 일으킬 수 있는 설비, 의료진 동선과 환자 동선의 분류,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영상시스템 등은 아주 잘 되어 있었지만 수용인원이 몇십명대로 한정돼 있어 유사시에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다른 병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표준화된 격리 병실, 병동 설비, 장비 등을 지원해주고 평소에는 일반 병실로 운영하되 유사시에 정부에서 수용하여 관리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다음은 의료인력 재충원도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의사, 간호사, 기타 환자와 직접 접하는 인력의 공급 확대와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 전문가들의 수요 공급 문제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서로 양보하고 합의하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언론도 지혜를 모아 적절한 보도 태도와 범위, 혹은 통제 등을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만 조성하고 국민을 공황상태로 몰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망자 수보다는 예방적인 문제와 감염시 대응 방법 등을 더 집중적으로 보도하였으면 한다. 현재 신종플루로 인한 감염자 및 사망자는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율적으로 언론 보도를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는 BT 육성과 예방백신의 자급자족 대책에 기여할 수 있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백신을 구걸하기 위하여 해외 출장을 가는 사태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하겠고, 수량 부족으로 2배 이상의 가격 폭등이 없어야 하겠으며, 이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 심리가 증폭되는 일도 없어야 하겠다. 또 국민들에게 백신이 부족할 경우 정상적이며 건강한 사람은 고위험군이나 허약자들에게 먼저 접종할 수 있도록 양보함으로써 새로운 국민정신 함양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한국의 우수한 인적 자원과 기술력이 HT(health technology)를 향해 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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