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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신종플루 공포증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신종플루 공포증'

병원에 방독면 쓰고 나타난 사나이

두려워 씨(가명)는 너무 괴로워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다.

그가 처음 진료실에 들어올 때 방역업체 직원이 소독나온 줄 알았다. 방독면에 장갑을 끼고 중무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려워 씨는 "신종플루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은 뒤 겁이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열심히 손을 씻고 마스크를 썼다. 그러나 불안감은 점점 커졌고 걱정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회사와 집 곳곳에 소독제를 비치했고, 가족을 모아놓고 위생교육을 수십 번 실시했다. 사망자 수가 곱절로 늘었다는 보도가 나온 날은 멸균 소독기를 들여놓았다. 밥도 살균한 식기에 따로 먹었다. 손 씻지 않고 문고리를 만졌다고 아들과 대판 싸운 뒤 가정의 대화는 단절되었다.

피해는 심각했다. 우선 본인이 너무 괴로웠다. 우울증에 빠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뭘 하나.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영업직인 그가 외부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수입이 반토막 났다.

두려워 씨의 진단은 신종플루 공포증이다. 일종의 건강염려증인데, 요즘 정신과 진료실에서 점점 더 자주 목격하고 있다.

신종플루에 걸릴'까봐' 늘 두렵고, 기운이 없고 목만 칼칼해도 병에 걸렸을'까봐' 걱정한다. 앞사람이 마른기침만 해도 신종플루일'까봐' 찜찜하다. 늘 '~까봐'로 말이 끝나기 때문에 필자는 환자들에게 '까봐'병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신종플루 공포증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신종플루와 백신에 관한 각종 괴담이 떠돌아다닌다. 지난주 금요일 둘째 아이가 '예방 접종을 받겠느냐'는 가정통신문을 보여주며 "예방주사 맞으면 죽는다"며 펄펄 뛰었다. 전국이 집단 히스테리 상태이다.

필자는 특히 사망자 숫자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보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많은 사람은 TV 자막으로 신종플루 사망자 발생 속보가 반복되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한다. 오늘 세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무서운 괴질이니 어디 피난이라도 가라는 것인가? 왜 아직도 공포에 떨지 않느냐고 윽박지르는 것인가?

신종플루 자체가 공포증을 낳는 게 아니라, 반복된 보도가 공포증을 낳는다. 9·11 테러 당시 TV에서 건물 붕괴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는데, 그걸 시청한 사람이 직접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보다 더 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다는 유명한 연구 결과가 있다.

신종플루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도와줄 방법이 있다. 우선 일부러 안심시키려고 애쓰지 말자. 그러면 오히려 더 초조해진다. 둘째, 루머에 휘둘리지 말고 신종플루 치사율은 일반 독감보다 낮다는 공신력있는 정보를 숙지한다. 얼마 전 신종플루가 심각단계로 격상되었는데, 이것은 많이 퍼져서 흔해졌다는 뜻이지, 신종플루 자체가 더 치명적인 중증 질환이 된 것은 절대 아니다.

공포증이란, 두려움의 빌미가 무엇이든 결국 뇌에서 공포 반응이 엉뚱하게 오작동된 현상이다.

따라서 평소 신종플루 걱정이 심각해 사람을 만나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정부가 사회 전체의 혼란과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적극적·체계적 노력을 해야 한다.

/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과교수
  • 2009.11.10 16:18 입력 / 2009.11.10 16: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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