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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용산' 해결 '공로자'들에게

[최보식 칼럼] '용산' 해결 '공로자'들에게

입력 : 2010.01.05 22:20 / 수정 : 2010.01.05 23:32

이 어둠침침한 '용산' 협상은 선례가 될 것
돈으로 두루뭉술 해결할 거라면 왜 1년이나 끌었나

 

점퍼 차림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초췌했다. 용산 철거민 진압 과정에서 숨진 김남훈 경사의 장례식에서 막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린 커피숍에서 잠깐 만났다.

"오늘 장례식에서 '당신이 이루지 못한 법질서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조사(弔辭)를 읽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 문구를 손질할 때 눈물이 났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경찰의 존재 이유는 무얼까. 숨진 철거민들도 불쌍하다…. 하지만 행인과 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불법 폭력을 경찰이 즉각 진압하지 않으면, 경찰이 시민의 안녕을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대신 할까."

경찰의 진압 작전 개시 전 하루 동안에만 농성자들은 화염병 200여개, 염산병 40여개, 골프공과 벽돌 수백개를 던졌다. 근처 한강로의 통행이 다섯차례 통제됐다. 건물 망루 속에는 쇠파이프 250개, 시너 70여통, 염산 20L짜리 2통, 새총발사대 20개, 골프공 1만개, 유리구슬 3000개, 쌀 20포대 등 시위도구가 준비돼 있었다. 결국 진압 과정의 화재로 경찰 1명, 농성자 5명이 숨졌다.

서울 도심에는 '살인 경찰' '김석기 퇴진' 시위가 계속됐다. 여권이나 청와대 일각에서도 "정권 부담을 줄이려면 그의 조기 경질뿐"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광우병 사태'의 재발에 겁먹고 있었다.

그는 자진사퇴를 택했고, 사석에서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하는 것처럼 내가 물러나면 법질서 확립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과 불의에 엄정하게 맞서고 타협하지 않는 공권력을 그는 꿈꿨던 것이다. 그는 '학생처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한해의 마감을 하루 앞둔 날, 장면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00여명의 취재진이 운집한 가운데 용산문제 타결을 발표했다. 개인적 감상(感傷)도 덧붙였다.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워온 유가족의 비통함을 이제나마 풀어드릴 수 있게 돼 다행이며 저 역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협상을 중재한 종교계 인사들과의 기념촬영도 있었다. 서울시가 배포한 '용산 협상 막전막후' 보도자료에는 온통 오 시장의 공로로 채워져 있다.

공(功)을 따지면 정운찬 총리가 우선이었다. 총리 취임 직후 용산 참사 현장부터 방문했고, 대통령을 수차례 설득하기도 했다. 그는 "많이 늦었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문제를 매듭짓게 돼 참으로 다행"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며 다시 한번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농성세력의 요구대로, 그는 정부를 대표해 '사과'를 전한 것이다. 해를 안 넘기고 마음먹은 것을 '원만하게' 해결한 데 대해 그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총리나 서울시장 그 누구도 법과 질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에만 흡족해할 뿐, 용산 사태에서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당시 농성자의 화염병 투척으로 화재가 발생해 사상자가 속출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심 법원의 유죄판결이 이미 있었지만. 심지어 당사자인 경찰 수뇌부회의에서조차 "골치 아픈 문제가 정치적으로 원만하게 해결됐다"고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일년 가까이 시신을 냉동고에 넣어둔 유족들의 피눈물을 떠올리면 어쩌면 좋은 결과일 수도 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안쓰러움과 지긋지긋함이 없지 않았다. 정부도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털어내야 한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좋은 게 늘 좋은 것인가.

'연내 해결'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마지막 담판은 29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끌었다. 용산 사태가 상징하는 법과 원칙은 벌써 잊혀졌다. 주요 쟁점은 상대가 제시한 요구액에서 몇푼을 더 깎느냐였다. 35억원에 가까운 보상금 지불은 재개발조합과 시공사에게로 넘겼다. "법적으로 정한 기준 외에는 책임질 수 없다"고 그동안 버텨온 조합측에 어떤 '대가'를 줬는지는 알 수 없다.

돈과 관련된 구체적 합의 내용은 '비밀'에 부쳐졌다. "나중에 이와 비슷한 협상을 할 때 '선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 '어둠침침한' 협상 자체가 앞으로 '선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돈'으로 두루뭉술 해결할 수 있었는데, 왜 1년이나 끌었는가.

너무 '각박(刻薄)한' 법치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감상적 온정주의 혹은 '떼법'에 투항하는 것에는 참을 수 없다. 보상금을 받을 농성 세력은 서울 도심에서 장례위원 5000명이 참여하는 장례식을 갖는다. '국민장' 혹은 '민주열사장'이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