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꽃이 피어도 봄은 아니고
조선일보 2010-04-07 [A35면]
벚꽃·산수유·개나리가 줄줄이 피건만 아직 봄이 온 건 아닌 모양이다. 백령도 앞바다의 뼛속까지 치미는 추위가 우리들의 춘심(春心)을 냉각시키고 있다. 유난히 긴 겨울이었던 만큼 누구나 화창한 봄날을 반기고픈 심정이지만, 들뜬 마음으로 '상춘곡(賞春曲)'을 흥얼흥얼 읊조릴 상황이 아니다. 천안함 침몰과 함께 대한민국은 차디찬 슬픔의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다. 해군 도시 진해에선 지금 연분홍 꽃망울이 터지고 있지만, 차가운 날씨 때문에 벚꽃이 3분의 1만 폈다고 한다. 꽃도 무거운 공기를 감지했나 보다.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이은상 '개나리')라는 오래된 시가 묘하게 2010년 대한민국의 봄을 뒤덮은 무거운 침묵과 절제의 분위기와 겹쳐서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봄은 더디게 다가왔다. 길었던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폭력 야수의 손에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희생된 여중생의 비극이 한동안 우리들 가슴에 화신(花信)이 깃들 엄두도 못 내게 했었다. 대한민국이 OECD국가 중 자살 1위라는 조사결과가 나왔을 무렵 한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떨어진 꽃잎이 됐다는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지금 우리는 백령도 앞바다에 생명의 꽃잎들이 찬바람에 흩날리는 상황에 애를 태우고 있다.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병사들, 후배들을 구하러 영하에 가까운 바다 속에서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던 고 한주호 준위, 나랏일이니까 도와야 한다며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98금양호 선원들…. 지금 백령도의 밤바람은 장엄한 진혼곡(鎭魂曲)이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불러오지 않듯이, 선행(善行) 한 번으로 덕행(德行)을 쌓는 게 아니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봄날이 한 번에 이뤄지지 않듯이, 행복도 노력한 자만이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천안함 인양과 진상조사로 모든 진실이 단번에 다 밝혀지기는 어렵다. 우리 정부와 해군의 초기대응 비판이나 기술적 원인 규명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정파적 입장에 따른 사태 해석과 음모론 확산, 불신의 증폭을 낳은 온갖 유언비어의 난무 등을 놓고 우리 모두 두고두고 자성(自省)해야 진정한 봄은 찾아온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슬퍼해도 꽃은 속절없이 핀다. 꽃은 소멸과 부활을 통해 순환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미국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는 "만약 꽃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도, 심지어는 인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구와 인류 역사를 담은 '광대한 여행'이란 책에서 그는 공룡 시대 말기에서야 '꽃이 피는 식물'(속씨식물)이 처음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온혈(溫血) 포유류는 속씨식물의 씨앗과 열매를 영양분으로 삼았다. 꿀은 곤충을, 씨앗은 새를 먹였다. 속씨식물을 먹고 진화한 원숭이들은 돌을 사용해 초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지상의 주인이 됐다.
꽃은 그래서 인간에게 탄생과 부활, 희망과 생명의 노래다. 아무리 봄이 슬퍼도 우리 사회는 꽃처럼 끈질기게 갱생(更生)해야 한다. 그런데 "겨울은 내 머릿속에 있고, 봄은 내 가슴속에 있다"고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가슴을 봄의 활력으로 재충전하더라도 우리의 이성은 차가운 백령도 앞바다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2010년 그해 봄은 따뜻하지 않았네, 라고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이은상 '개나리')라는 오래된 시가 묘하게 2010년 대한민국의 봄을 뒤덮은 무거운 침묵과 절제의 분위기와 겹쳐서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봄은 더디게 다가왔다. 길었던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폭력 야수의 손에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희생된 여중생의 비극이 한동안 우리들 가슴에 화신(花信)이 깃들 엄두도 못 내게 했었다. 대한민국이 OECD국가 중 자살 1위라는 조사결과가 나왔을 무렵 한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떨어진 꽃잎이 됐다는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지금 우리는 백령도 앞바다에 생명의 꽃잎들이 찬바람에 흩날리는 상황에 애를 태우고 있다.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병사들, 후배들을 구하러 영하에 가까운 바다 속에서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던 고 한주호 준위, 나랏일이니까 도와야 한다며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98금양호 선원들…. 지금 백령도의 밤바람은 장엄한 진혼곡(鎭魂曲)이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불러오지 않듯이, 선행(善行) 한 번으로 덕행(德行)을 쌓는 게 아니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봄날이 한 번에 이뤄지지 않듯이, 행복도 노력한 자만이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천안함 인양과 진상조사로 모든 진실이 단번에 다 밝혀지기는 어렵다. 우리 정부와 해군의 초기대응 비판이나 기술적 원인 규명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정파적 입장에 따른 사태 해석과 음모론 확산, 불신의 증폭을 낳은 온갖 유언비어의 난무 등을 놓고 우리 모두 두고두고 자성(自省)해야 진정한 봄은 찾아온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슬퍼해도 꽃은 속절없이 핀다. 꽃은 소멸과 부활을 통해 순환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미국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는 "만약 꽃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도, 심지어는 인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구와 인류 역사를 담은 '광대한 여행'이란 책에서 그는 공룡 시대 말기에서야 '꽃이 피는 식물'(속씨식물)이 처음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온혈(溫血) 포유류는 속씨식물의 씨앗과 열매를 영양분으로 삼았다. 꿀은 곤충을, 씨앗은 새를 먹였다. 속씨식물을 먹고 진화한 원숭이들은 돌을 사용해 초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지상의 주인이 됐다.
꽃은 그래서 인간에게 탄생과 부활, 희망과 생명의 노래다. 아무리 봄이 슬퍼도 우리 사회는 꽃처럼 끈질기게 갱생(更生)해야 한다. 그런데 "겨울은 내 머릿속에 있고, 봄은 내 가슴속에 있다"고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가슴을 봄의 활력으로 재충전하더라도 우리의 이성은 차가운 백령도 앞바다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2010년 그해 봄은 따뜻하지 않았네, 라고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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