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왕비로서 조선시대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능과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13살때 大君(적자인 왕자)과 결혼하여 6년후인 1506년(19살)에 중종반정으로 11대 중종의 왕비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중종반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왕비된지 단7일만에 폐위되어 왕이 된 남편이 있는 궁궐에서 쫒겨나서 개인 사옥(私家)에서 살다가 1557년(71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세종대왕이 54세에 세상을 떴으니 당시로서는 장수한 셈입니다만 권세가에서 태어나 왕족으로 살았으니 부러운 삶을 산 셈이지요.
그후 영조15년(1739년)에 왕비로 복위되어 단경왕후, 능 이름을 온릉(溫陵)이라 하였답니다.
그러니 13살에 왕자와 결혼하여 6년을 살다가 19살에 왕비가 되자마자 7일만에 정치적 상황(신하들의 상소와 반대)으로 이혼을 하고 71살까지 私家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난지 182년이나 지나서야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하니 참 애절한 삶입니다.
(해설사의 도움없이 내 스스로 해석하여 기록하는겁니다만, 내가 왕족입니다.)
내 자신이 양반도 상놈도 아닌 통일신라시대의 왕족으로서 짐작한겁니다만, 안식구의 삶과 비교한다는건 어불성설입니다.
통일신라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내가 한반도의 왕이 되었을 수도 있단 얘깁니다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잠언16:18 말씀이 갑자기 뇌리에 떠오릅니다.
내 가본 곳이 공기 맑고 조용한 곳이기에 안식구에게도 소개합니다.
공릉천변의 쉴만한 곳을 찾다가 뜨거워진 날씨에 다시 창릉천변으로 돌아왔습니다.
솔내음누리길가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겸 카페를 찾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되어서 평일인데도 많은 인파가 지난 날의 서너배는 되는 듯 합니다.
잘 꾸며진 곳이지만 많은 인파를 뒤로 하고 다시 예전에 가보았던 제빵소를 찾습니다.
이곳은 아이들이 거의 없으며 분위기가 깔끔한 곳입니다.
장소 안내는 내가 하지만 빵을 고르는건 안식구가 하면서도 귀찮아하는 내 의견은 꼭 묻습니다.
나 홀로 있을 땐 계곡을 찾고 자연을 찾지만 안식구는 잘 꾸며진 카페나 돈이 드는 분위기 있는 곳을 찾습니다.
이제 다시 보니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값이 7천원입니다만 아메리카노 커피만큼은 리필이 가능하니 이에 만족합니다..
안식구는... 혈액암의 일종으로서 50대라면 골수이식을 추천하지만 60중반에 들어서서 혈액 조직을 약물로 조정하여 현상 유지를 하며 지금도 혈소판 수치가 높지만 백혈구 적혈구 림프구 등의 다른 조직도 이상 발생시에는 수혈이든 사혈이든 조치를 취하는데 후유증으로 비장 크기나 췌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면역력이 현저히 낮아서 독감 처방약인 타미플루조차 견뎌내지 못하며 요즈음 자가 증세로 없던 알러지가 생겼다네요.
(나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없던 병이 생기고 더욱 악화시키는 듯 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여식의 초교 1학년때 담임이었던 홍기숙 선생님이 지금쯤 70대일텐데 당시 서울 대치동에서 인천으로 출퇴근 하셨는데 급작스럽게 백혈병으로 중학생인 아들을 잃었다는 안타까움을 오늘도 나에게 전하면서 여식을 잘 대해 주셔서 감사하단 말도 전합니다.
하면서도 지난 5월에 가족 사진을 찍으면서 6살, 8살 외손주들의 표정을 수습하지 못하여 결국 사진 합성을 하는 것을 보았노라는 말도 듣습니다.
여식이 결혼후에 사돈이 며느리 생일을 빠짐없이 챙겨 사돈을 잘 만났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도 사위 생일을 빠짐없이 챙기지 않았느냐 하니 우리가 하는건 당연한거라네요.
오랜만에 안식구와 데이트를 합니다만 평시 아껴쓰던 돈이 기만원 훜 나갑니다만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십여명되는 무리의 군인들이 들어와서 빵과 음료를 먹는데 최저가인 아메리카노만 먹어도 십만원가까이 되는 돈인데 십시일반이 아니라 인솔자가 내는걸로 보입니다만,
8년전이지만 대위 월급이 250만원이었음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직업군인이 아닌 의무역으로서 박봉일텐데 인솔자의 인덕이 참 푸근할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 빵과 차에 기만원을 쓰고도 인근 마트에 와서는 십원 더 싼 곳을 찾고 보름치 이상되는 밑반찬거리와 수개월 쓸 수 있는 각종 세재, 그리고 생필품을 사는데도 더 싼걸 고르는데 비싸다 하면서도 아끼고 아껴서 십만원 초반입니다만 산다는게 참...기분 탓이 큽니다.
예전엔 외식하면 그 돈으로 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먹으면 더 푸짐하다하여 외식은 생각치도 못했었는데,
이제 육신의 장막이 낡아져서 꿰매고 수선할 때가 되어서야 밥 한끼라도 집에서보다는 외식하는게 편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오후 외식 비용도 빵과 차의 비용과 별차이없이 기만원입니다.
사람이 돈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고 다시 건강을 되찾기위해 돈을 쓰는 것처럼,
제 스스로 아무리 똑똑타 하여도 지나고 보니 바보같은 인생을 살았음을 오늘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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