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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기독 고찰

[3] 움푹 팬 바위… 엎드려 기도하던 요한의 자취인가 - 밧모·에베소

[그리스도교 초대 교회를 찾아서]

 [3] 움푹 팬 바위… 엎드려 기도하던 요한의 파트모스(그리스)

김한수 기자

  • 입력 : 2010.05.24 03:16 / 수정 : 2010.05.24 15:00

밧모·에베소
요한이 유배가던 그날처럼 밧모섬 앞바다는 요동치고…
환상 봤다는 동굴 앞에선 눈앞에 계시록 펼쳐진 듯

 

'배가 뒤집힐 것 같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지난 4월 28일 오후 3시쯤 그리스의 파트모스섬을 출발해 터키로 향하는 여객선은 전후좌우로 요동쳤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은 작열하고 바닷물도 코발트빛으로 아름다웠지만 바람과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 요란했다. 결국 1시간여 만에 파트모스로 뱃머리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험한 바닷길을 2000년 전 배를 타고 건너온 사도가 있었다.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이다.

성경에 '밧모'로 표기된 파트모스섬은 남북 16㎞, 동서 10㎞ 정도의 작은 섬이다. 산 위에서 제주도처럼 돌담을 세워놓은 밭들이 내려다보인다. 바람이 세고 척박한 섬이었다. 사도 요한이 이 섬에 오게 된 것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는 요한계시록 구절처럼 도미티아누스(재위 81~96년)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문이었다.

서기 95년 무렵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호라마을 위의 바위동굴을 기도처로 삼았다. 지금은 요한을 기념하는 그리스정교회 성당으로 꾸며진 이 동굴에 들어서면 바닥에서 1m쯤 되는 높이의 바위에 작은 홈이 패여있다. 요한이 엎드려 기도한 후 일어날 때 짚으면서 팬 자국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동굴 입구에선 밧모섬 전체와 스칼라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에서 요한은 환상을 보고 그 내용을 계시록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적었다. 당초 밧모섬에는 그리스의 여러 신(神)을 섬기는 풍습이 있었지만 요한이 1년 반의 유배를 마치고 에페수스(성경에선 에베소로 표기)로 귀환할 때에는 섬 주민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다고 한다.

 

사도 요한이 계시로을 쓴 동굴위에 만들어진 그리스정교회 성당 뒤로 파트모스(밧모)섬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 김한수 기자


요한동굴 위로는 그리스정교회의 신학교가 있고 산 정상에는 1088년에 세워진 '요한수도원'이 있다. 각 장(章)의 첫 글자를 황금으로 쓴 '마가복음' 등 진귀한 유물을 다수 소장한 이 수도원에는 요한이 밧줄에 손이 묶인 채 작은 배를 타고 험한 파도를 헤치며 이 섬으로 유배오는 장면을 그린 천장화도 볼 수 있었다.

이튿날 새벽 파도가 잦아진 틈을 이용해 겨우 바다를 건너 터키에 닿았다. 이날 낮에 서울 광림교회 순례단이 찾은 에베소는 고대로마의 유적들로 가득했다. 지금은 오랜 지진과 퇴적 작용으로 내륙의 폐허가 됐지만 로마시대 항구도시로서 명성을 날렸던 지역다웠다. 거대한 계곡엔 코린트와 이오니아 양식의 석주(石柱)들이 즐비하고 고대 로마시대의 세계적 도서관이었던 셀수스도서관, 2만명 이상을 수용했다는 대형 원형극장, 풍요와 다산(多産)의 여신 아르테미스 신전 등이 당시 이 도시의 영화(榮華)를 웅변하고 있었다.

요한수도원 회랑의 천장화, 사도 요한이 밧줄에 묶인 채 파도를 헤치며 파트모스(밧모)섬으로 유배오는 모습을 그렸다.

 

에베소는 요한과 바울의 발자취가 함께 남아 있는 곳이다. 요한은 이곳에서 요한복음을 집필했으며 밧모섬에 유배를 다녀온 후에도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바울은 에베소에 대해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다"고 고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에베소와 관련된 바울의 행적은 사도행전에 자세히 전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성령은 모르고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했다. 또 병자와 악귀 들린 사람들까지 고쳐주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고 한다. 바울의 이런 눈부신 전도는 아르테미스 여신상(女神像)을 만들어 팔던 은세공업자들의 생업을 위협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다른 초대교회 유적지들과 마찬가지로 에베소에서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바울과 요한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그리스도교 초대교회 순례길은 역시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찾아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