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조원형목사님

110529 진실 여행

진실 여

110529                                                                                                           조원형목사님

 

...이에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누가복음 15:11~17)

 

18세기 정치가이며 사상가, 과학자인 미국 벤쟈민 프랭크린 자서전에서 좌우명을 "겸손"이라 했다.

아침, 점심, 저녁, 잠잘 때의 기도가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겸손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그 이유가 청년시절 친구집 파티 초대에 참석한 후 귀가할 때에 문높이가 낮았다. 몸을 낮추었는데도 이마를 부딪혀 피가 났다. 친구의 변명이 허리를 굽혀야 할 때 굽히지 않아 큰 손해를 보았으므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 문설주부터 고쳤다고 한다. 상대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겸손에 있다고 인정하고 겸손을 좌우명으로 삼고 기도했다고 한다.

 

겸손을 빼면 아무리 성공하여도 패망의 선봉이 된다.

사도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가져 세번이나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을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그 이유가 겸손하라는 명령 때문이다.

모세에게도 연단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하셨지만 하나님앞에서 분노함으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바라는 보지만 들어가지는 못한다.

순간만 참고 겸손했으면 되었을텐데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일을 망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마태복음 13~14장에서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말씀은 몌수믿는 길은 좁은 길이라 말씀한다.

욕심부터 들어내어야 한다. 세상의 욕심, 욕망을 들어내어야 통과할 수 있다.

목사의 입도 좁아야 한다. 자칫 넓혔다가는 성도들의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후 첫 등원 의회에서 지팡이를 들고 나왔다. 선거기간중 허리를 굽혔기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시간도 안되어 허리가 꼿꼿이 세워지며 굳어져 허리가 안굽혀진다. 그러므로 국회의원 선거를 매달 하자는 이야기이다.

 

본문말씀에서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말한다.

성도를 겸손하게 만드는 구절이며 예화이다. 겸손하고 낮아져서 그 때부터 씨를 뿌려 자라게 하신다.

요한계시록 6:1에서 복음과 함께 전쟁, 기근이 있는 것은 택한 백성을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가 재산을 쪼개어 자식에게 내어준 것은 자식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아버지 집에 남아있는 큰아들은 겸손을 모른다. 큰아들은 과시한다. 벌줄 자에게 상주시고 상줄 자에게 고난을 주십니까 말하지만 벌줄 자에게 상주심을 깨닫는 것이 우리 신앙인이다. 우리자신을 알아야 한다.

 

마가복음에서 예루살렘 나귀 입성 장면이다.

나귀는 훈련도 없었지만 예루살렘에 거뜬히 입성한다. 이 나귀는 멈칫 한번 하지 않는다. 이 나귀에 비해서 시험들고 원망하는 우리 자신을 본다.

 

탕자는 아버지 집에서 주리는 종과 짐승만도못하다는 인식과 고백을 한다.

자기죄를 잊을 수없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내 주장만 내세우고 뛰쳐나갔다. 주위에 무시당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감히 머리들 수 없다.

오늘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부인할 때가 많다.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부정하며 살았던 탕자는 그 죄를 깨닫는다.

낭비하는 줄 알면서도 내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은 진실 여행을 떠나보내셨기 때문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창세기 27~29장에서 야곱의 생애는 우리의 생과 다를 바 없다. 야곱의 삶 주제가 나그네 인생이다.

육체뿐 아니라 아들도 잃고 정신적 나그네로 산다. 죽어 자신을 고향에 묻어달라고 한다.

우리의 고향, 주인이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한다.

 

탕자에게는 보상 심리가 있었다.

내가 아버지로로부터 못다받은 재산이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은혜를 보상해드리고자 하는 마음, 아버지가옳았음을 인정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서 거지 나사로는 아버지도 없이 대문앞에서 구걸하는 삶을 살았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탕자는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돌아갈 고향이 있었지만 거지 나사로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 기회를 잃은 , 늦게 돌아온 탕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받고자 하는 보상심리보다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까지 희생하심에 대한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말씀 > 조원형목사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0605 주와 함께 모으는 자  (0) 2011.06.11
110605 인간의 변명  (0) 2011.06.11
110522 네 귀를 기울이라  (0) 2011.06.04
110508 아버지의 마음  (0) 2011.05.10
110501 네 마음속을 지키라  (0) 201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