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신앙
120624 조원형목사님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행전 5:1~11)
작가 김영하의 “한국인의 탈무드”중에서 한 구두쇠가 돈을 모아 돈자루를 만들었는데 없어졌다.
내 돈을 찾아주는 이에게 백냥을 주겠다 하니 한 성실한 이가 돈자루를 줏었다면서 돌려주었는데 반갑고 기뻐긴 하지만 약속한 백냥이 아까웠다. 감사보다는 욕심이 앞섰다. 그리하여 돈자루를 보고는 8백냥이 있었는데 백냥이 없어졌다면서 줄 수 없다고 우긴다. 그대로 가져온 청년이 고을 사또에게 신고하여 재판한다. 분명 800냥이 들어 있었느냐. 예 틀림없습니다. 젊은이에게 돈을 뺐는냐? 물으니 한푼도 빼지 않았노라 대답한다. 이에 사또가 판결하기를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 진실인 것 같다. 그러니 100냥이 부족한 주머니는 부자의 것이 아니므로 젊은이가 줏었으니 가져가라고 판결한다.
소원하여 빌어 찾았으나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 또 다른 욕망이 나타나 사람을 못쓰게 한다. 아브라함 맷치 메실로의 “사람 욕심에 대한 책”에서 욕망이 한단계 한단계 올라가면서 사람을 무너지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어 한다.
현대는 생리적 욕구가 충족된 시대이다. 이제는 또 다른 욕구, 욕망이 커졌다.
북한 실정에 대한 간증이다. 탈북자 2만4천여명이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이틀장도 어렵다 한다. 하루만에 장례를 치룬다. 오후나 밤에 묻은 시신을 파내어 시장에 팔기도 하고 도려내어 인육을 먹는다. 그런 북한을 종북자들이 두둔, 찬양, 추종한다.
배고픈 설움이 크다.
아브라함 맷치 메실로는 생리적 욕구가 충복되면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것이 주택이고 집이다. 그것이 충복되면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안전과 평안을 주는 단체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그 다음엔 자기 존중의 욕구인데 여기에서 잘못된 길로 가기 쉽다. 마지막은 자기 실현의 욕구이다. 자신이 바라는대로 되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이다. 자기를 존중하는 욕구와 자기 실현의 욕구가 잘못된 길로 가기 쉽다. 본능의 욕구가 상대적 욕구로 변할 때 다른 사람과 같아지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잘못된 방법으로 그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
최홍규의 “미덕의 책”에서 옛날 진실과 거짓이란 두 사람이 사는데 거짓은 수단이 좋아 늘 배불리 다니는데 진실은 허기지고 길거리에서 기진하게 산다. 사람이 일거리를 주지 않으므로 그렇다 하여 거짓을 따라가니 큰 음식점에 들어가 진수성찬을 다 시켜 먹는다. 다 먹고나서는 점원에게 거스름돈을 왜 안 가져오느냐고 큰소리친다. 억지를 쓰니 거스름돈까지 줘서 보냈다. 진실이 아무 말 못하고 나오니 그 점원이 내쫒기는 것을 본다. 그 장면을 보고 거짓과 갈라서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같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진실된 방법으로 욕망을 채워야 하는데, 다른 사람과 같아지게 되면 다른 사람의 집을 가지고 싶어하며 또 다른이와 달라지고자 하는 마음에 시기질투가 생긴다.
어떤 어머니가 며느리를 맞이해 옷을 사 입혔더니 딸이 심통을 내어 딸에게도 사준다. 전화로 뭐 입고 올꺼냐는 통화 모습을 모고 다시 달라지고 싶어함을 본다. 경주나 이집트에 가서도 묘지 무덤에서도 다른이와 다르게 크게 쌓는 것을 본다.
마지막 단계는 자기를 우상화하게 되는 단계이다. 그렇게 존중받고 싶어한다. 전직 국회의원의 글이다. 국회의원으로 살다가 일반인으로 살게 되니 무척 불편함을 고백한다. 특권이 있다가 평민으로 돌아가게 되느 삶이 불편하다는 이야기이다.
본문 말씀에서 초대교회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복음 전하는 뜨거운 열정에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교회에 헌금했다. 그래도 희년에는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관습이 있는 나라이다. 한 사람이 선을 행하면 그것이 알려진다. 바나바가 먼저 재산을 팔아 헌금을 시작한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어한다. 지신의 직분을 갖게 되면 더 열정을 가지고 열심을 하므로 교회에서는 더 많은 일꾼을 세운다. 또한 자손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하며 교회로 돌아오게 한다. 같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채우려고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사명을 더욱 북돋우어야 한다.
본문에서는 감추었다고 말씀한다. 얼마를 떼어놓고 가져왔다고 고백하면 죽음을 면했을 것이다. 음주 운전에 붙잡혔다. 죄값을 양노원에서 봉사하고 보람을 느끼고는 또 스스로 시간을 내어 봉사하게 된다.
전국시대에 “낙양자”에서 길을 가다가 누가 잃어버린 금덩이를 줏었는데 집에 가져오니 혼난다. 분명 주인이 있을텐데 줏은 것을 누가 선비라 하겠는가 하여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또 유학중 집에 오고싶어서 오니 부인이 길쌈하던 실을 짤라버리므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여 위나라의 큰 일꾼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라도 말렸어야 할 일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공모했다.
진실되게 신앙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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