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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50201 내게 주신 가시

내게 주신 가시

 

150201                                                                                                               조원형목사님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2:7~10)

 

사회학자 칼 지브랄은 성공한 사람에게 두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사랑하는 마음이다. 맡은 바 일, 위치, 소임을 다한다. 그리고 둘째는 내 허물, 부족한 것, 죄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의 잘못을 아는 사람이 사랑할 줄도 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내 부족, 허물, 약점을 아는 것으로 신앙에 성숙이 온다.

 

신앙인의 연단은 필수 과정이다.

평탄한 가운데의 연단은 없다. 시험, 시련, 고난, 역경속에서 자란다.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시험이다.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는 말씀이지 시험이 없을 수는 없다. 이를 통해 강건해지고 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1960년대 한국 교회의 집회 요점이 은사의 문제, 축복의 문제였다. 은사를 받아야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보다 나중에 믿는 사람도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내 자신은 은혜는 받았는 것 같은데 은사는 받지 못했다. 그 흔한 방언의 은사도 받지 못했다. 밤에 꿈속에서 희미한 불빛을 들고 오는 이가 '내가 네 주 예수 그리스도라' 한다. '내 주님이시면 십자가의 흔적을 보여 부십시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말한 것 같다. 그러나 손바닥이 아무 표시가 없으므로 '사탄아 물러가라' 하니 사람이 없어진 꿈이다. 꿈이라도 예수님을 보려 했으나 섭섭하고 낙망적이었다. 나중에 성경을 공부하며 깨달은 것은 그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내 안의 성령께서 어두운 영을 분별하게 하시고 물리치게 하심을 깨닫는다. 꿈에라도 시험하는 시탄을 물리치는 것은 내 실력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을 깨닫는다. 은혜를 깨달을 때 진실하고 겸손해야 하는데 착각하면 잘못된 환상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착각한다. 은사도 성도들에게 주셨지만 하나님께 요긴하게 쓰여질 수 있도록 하신다.

 

사변 후 신앙인에게 주신 것은 밥 세끼 걱정하던 시대에 가난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그러나 잘 살고 축복받은 가운데도 시험은 있다. 부요하게 하셨으나 단계적으로 이끄시고 훈련시키셔서 믿음에 손해보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축복하신다. 물질의 축복을 주시면 더 충성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겠노라 하지만 내 구차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기도하지만 어린이가 청소년으로 자라면서 용돈 액수가 커지고 요구가 많아지면서 그 부모는 사람되기를 바라고 경제관이 바로 서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 앞에 더 겸손하고 더 영적으로 성숙하고 충성하길 바란다. 예수믿는 사람들의 사람됨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전도가 되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 됨됨이로 빛을 발해야 한다. 겸손하고 낮아지고 작게 여기며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깨닫는데서 성장이 있다.

 

중세 시대 빛의 사자로 둔갑한 사탄이 사막에서 기도하는 교구에게 하나님의 사자 가브리엘을 칭한다. 그 교구는 하나님의 귀한 메세지를 나처럼 못난 사람에게 보내실 리 없다고 대답한다.  시탄이 혀를 차며 겸손한 사람은 시험도 안되는구나 한다.

우리는 많은 시험을 당하며 산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기에 견뎌낸다. 그것의 방법은 겸손이고 내 죄를 아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의 근심, 낙담, 좌절, 실망, 불평의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자신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서도 나를 모르니까 감사해야 할 때에 분노한다. 겸손은 낮아짐, 받아들임이다.

한 소경이 길을 가는데 주위에서 보니 답답해 한다. 그 소리에 소경이 멈추어서서 나를 보고 하는 소리인가 묻는다. 이에 그렇다 하니 나는 아니라 한다. 눈이 보이지 않아 더듬거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듣는 것이 풍부하고 말도 잘하여 시를 쓴다, 하반신 장애에 비하여 어디든 가고 불행하다 생각하지 못한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든 것을 가진 자는 왜 불평이 많은가 가슴을 친다.

둘째는, 자신도 완벽한 인간이 되길 원하고 가족 모두가 완벽해지길 바란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순금은 없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마리암느의 말이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능력 부족이 아니라 불행한 것은 자신의 과대 평가 때문이다.

부족한 사람으로서 내 주변을 과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족이 미움의 대상에서 사랑의 대상으로 변한다. 사랑의 대상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이 있기 때문이다. 존경의 대상도 무시한다.

 

어릴 땐 산수, 자라면서 함수, 미분, 적분으로 풀어간다.

신앙인들의 두가지 수학 문제가 있다.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풀어야 한다. 이해하고 배려해야 용서하고 포용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교만을 깨닫는다. 내 약점을 깨닫고 겸손으로 나가면 불평 불만이 감사로 바뀐다.

 

본문 말씀이다. 큰 그릇으로 쓰시기 위한 사도  바울의 속에는 겸손하고 온유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교만이 있다. 곁으로 보기엔 겸손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교만, 분노, 시기, 질투가 그 속에 숨어 있다. 하나님의 큰 그릇으로 쓰시기 위해서 자동차의 제어장치, 브레이크를 설치해 놓으셨다. 바울이 낙담하는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네 은혜가 족하다 말씀하신다. 다른 모든 이들은 고침을 받았다는데 정작 자신의 가시를 뺄 수가 없다. 사명자에 대한 비상한 조치이다. 여기저기 가시를 못박아 놓으셔서 교만치 않게 하신다.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에 감사한다. 어쩔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 주변이 모두가 가시라 생각치 말라. 바울은 실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각각 딴데로 간 것처럼 각자의 처지에서 몸부림쳤던 가시, 시련은 나를 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이끄시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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