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교회
151004 조원형목사님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사도행전 7:32~38)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스펀죤 목사의 집회 후에 한 청년이 신앙 상담을 요청한다.
도저히 신앙생활을 못한다. 교회마다 문제가 있어 상처받는다. 참 좋은 교회를 소개해 주십사 한다. 목사님의 말씀이 완전한 교회를 찾느냐. 나도 마찬가지로 찾았지만 완전한 교회를 찾지 못했으니 찾게되면 나에게도 알려달라 한다. 단지 당부하고픈 것은 완전한 교회를 찾으면 그 교회에는 등록하지 말라 한다. 왜 그런가 물으니 그 완전한 교회가 청년이 등록하는 순간에 완전한 교회가 깨어진다 하니 청년이 깨닫는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가 없다.
우리 성도가 허물투성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목표가 아니다. 율법적인 교회로서 잘못된 사람을 매장시키는 교회가 된다. 은혜로운 교회, 용서하고 이해하는 교회여야 한다. 완전한 교회를 찾으려면 혼자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고 살 뿐이지 자신은 허물투성이이다. 이 세상엔 완전한 사람이 없다. 내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다. 내 자신이 먼저 허물투성이이다.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다가 사람을 통해서 아니 목사님을 통해서조차 시험이 든다. 교회는 고물상이요 폐차장이다. 심령 상태, 인격이 그렇다. 선한 마음으로 천사처럼 사는 곳이 아니다.
우리 교회가 39년이 되었다. 그 동안도 버려야 할 내 자신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은혜에 감사한다.
후배 목사가 묻는다. 교회가 어떤 곳인가. 이에 고물상이라 대답한다. 고쳐도 상처까지 입어도 못 고치는 곳, 고양이 개밥그릇도 모이는 곳이다. 평생 신앙생활하면서도 양양거리고 으르렁거린다. 그 버릇을 못고친다. 덮고 용서함으로서 우정이 유지되는 것이다.
의사인 장로 한분이 대학교수나 대기업 중책도 마다하고 북한 선교를 지금까지도 하신다. 북한에 의료품, 의료물자를 가지고 들어가지만 별것을 다 트집잡는다. 카자흐스탄에 선교차원에서 아이들 학용품을 들고 갔는데 확인하고 의심스러우면 조사하면 될 일인데 한 박스에 100불씩 내라 한다. 결국 5불씩 내긴 했지만 눈물 흘리는 예수님 모습을 보고 화를 참는다. 그리하여 지금껏 선교한다.
교회가 문제투성이, 고통과 아픔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탄식하시고 돌아보시는 교회, 피로 값주신 교회이다.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구원 역사를 계속하시는 교회, 나같은 죄인도 구원하시는 교회인데 왜 저놈은 계속 교회 다니게 하느냐 불평하지 말라.
스데반 집사가 마지막 설교 설명이 본문 말씀이다.
이 세상엔 완전한 교회가 없다. 모세가 인도한 광야교회도 완전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쓰셨을 뿐이다. 완전하지 못한 교회라 하여 말살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39년간 지내오면서 문제없는 나날이 없었다. 옛 홍은균목사님의 설교집 "친절한 교회를 찾아서 방랑의 길을 떠난 한국 교인들이여"라는 책으로서 제목이 길다. 교회를 기웃거려 보지만 얼마안가서 상처입는다. 당신이 베풀지 않은 사랑 은혜 긍휼을 누가 베풀겠는가. 그리하여 당신이 머물 교회는 없다고 한다. '한국 교회 방랑객들이여' 라고 끝을 맺는다.
이 속성이 광야 교회의 속성이다.
이 중에서 모세에 대한 증언이 있다.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시는데 걸린 기간이 40+40=총80년이었다. 모세도 그러한데 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러하면서도 목회는 하나님이 이끄셔서 성공했지만 자신의 신앙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한다. 자신의 혈기를 다스리지 못해서 청년 때에도 그러했지만 노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나설 때는 실패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왜 내 마음을 알아주시지 않고 실패하게 하시느냐 원망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광야에 들어가지만 연단 속에서 40년을 지내며 다시 깨닫는다.다 알고 난 후 나는 못한다고 말한다. 40년전에는 나밖에 없다 생각했는데 실패하고는 광야교회는 가데스바네아까지 와서 요단강까지 와서는 불기둥 구름기둥이 뒤로 돌아선다. 가나안을 앞에 두고 백성들이 원망하며 모세를 죽이려까지 한다. 우리는 충분한 것 같은데 하나님 보시기에 자격 미달이다.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 갈렙은 40년간 시종 노릇하며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다.
본문의 스데반 집사가 광야교회란 말을 최초로 단한번 순교직전에 사용했다.
그것은 연단을 상징한다. 율법보다는 은혜 용서 긍휼의 교회이다. 40년간의 역사이다. 연단받는 제목이 겸손 낮아짐이다. 몇마디 몇가지 사건에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80년의 긴 세월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모세의 실패를 본다.
한 청년이 자신의 재능을 보고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곤충학자 파브르를 보고 모든 것에 관심있는데 노력하고 충성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다. 파브로의 대답이 멀리 보이는 돋보기 안경을 보고 태양을 뒤로 하여 흰 종이에 비춘다. 불을 붙여 경험하게 한다. 오직 한가지에 집중하라 한다. 여러 가지 중에서 음악 과학 미술 문학 중에서 훌륭한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교회 일꾼마다 받은 달란트가 많다.
겸손은 자기 무능, 죄를 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신다. 낮아져서 충성하는 사람을 원하신다.
죄인이 어떻게 죄인을 비난하는가. 충성하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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