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
150927 조원형목사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 18:24~30)
독일의 심리학자 에릭 포름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썼다.
먼저, 인생의 힘, 양식으로 삼는 것을 소유로 삼는다.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에 기쁨 보람을 느끼며 또 노력한다. 그것으로 행복의 근원을 삼는다. 소유를 인생의 전부이며 과시의 방법으로 생각한다. 소위 '갑질'이란 것도 그 결과이다. 이를 삶의 의미요 보람으로느낀다. 소유를 잃었을 때 모든 것을 잃은 것으로 낙담하고 절망한다. 인생의 미숙아이다.
둘째는 존재의 의미를 인생의 양식으로 삼는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 용기 기쁨 행복을 얻는다. 성숙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 강건, 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됨에 그 의미를 찾는다. 세상 기준을 물질이 아닌 신앙에 둔다. 충성하고 의미있는 일에 쓰였을 때 감사한다. 깨인 사람이다. 거듭난 사람이다.
유럽 관광객들이 아프리카 관광중 원시부족 마을에서 장사를 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수입을 얻기 위해 장사한다. 프랑스 관광객중 장사하는 사람이 이를 보고 놀란다. 한 노인이 모자 바구니를 만들어 파는데 짚과 대나무로 만들었지만 그 정교함에 놀란다. 번쩍 눈에 띄어 이걸 사다가 프랑스에 팔면 상당한 이익을 보리라 생각한다. 가방 모자 생활용품이 아름답고 정교하다. 그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얼마인가. 어느 물건이든지 10불이라 한다. 이에 내가 그 모든 것을 10만개씩 주문하면 깍아서 얼마에 해 주겠는가 한다. 그 노인이 한참 계산하더니 개당 20불을 내라 한다. 왜 그런가 이유를 물으니 신경질을 내며 당신은 내 삶의 재미를 빼앗고 돈의 노예로 만들려 한다면서 그 댓가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프랑스인은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삶의 의미란 뜻은 무엇인가.
수입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과 동일한 일을 해도 하늘과 땅 차이이다. 헌금 생활, 봉사 생활도 기버하고 감사해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부담을 가지고 인색하게 된다. 사람이 인격, 물질, 신앙,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물질에 시험당하기 쉽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수수께끼를 한다. 손자의 차례가 되어 수수께끼를 낸다. 낙타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어요? - 어떻게 넣느냐? - 나는 넣을 수 있다. 그거야 쉽다고 손다가 말한다. 냉장고를 낙타들어갈 만큼 크게 만들면 된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고정관념과 손자의 앞선 지혜 차이이다. 또는 마술로 낙타를 작게 하여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고도 한다. 고정 관념은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 이상의 세계를 본다.
본문에서 바늘귀란 예전에 바느질할 때 바늘 머리에 뚫린 구멍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 전에 예수님께 나아온 청년 부자는 재물과 율법, 도덕을 잘 지켰다고 과시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부자 청년이 묻는다. 이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진정성이 아닌 부와 권세와 봉사에 칭찬을 기대한다. 부에 매인 사람이다.
선하고 착하게 살면 예수 믿지 않아도 천국가는 것이 아닌가. 그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이 청년은 유대인으로서 생활도 넉넉하고 고통 고난을 경험치 못했다. 도덕 윤리 율법적으로 잘 지키며 살았다. 나쯤 되면 나같이 살면 천국에 갈 것이라 예상하고 질문한다.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사정이 급급해서 예수님께 나왔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나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지혜롭게 대화하신다. 율법, 부를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짤라서 말하여 반감을 갖게 하지 않으신다. 언쟁으로 마음을 닫히게 하시지 않고 깨닫게 하신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잘 지켰는데 칭찬하신다. 그런데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말씀하신다. 영생을 줄 수 있으니 네 모든 소유를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 네 모든 소유를 그대로 두고 나를 따르면 고난과 역경 때에 되돌아갈 것이다. 시험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소유를 없애라는 것이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그것을 보면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라. 그러나 그 청년은 예수님에 대한 반감보다는 소유를 나눔에 근심하고 소유로 돌아간다. 삶의 의미를 고민했지만 결국 소유로 돌아간다.
그 청년에게 소유란 자기 소유, 돈이 전부였다. 명예 대접 존경을 받았는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젊음 세상 야망과 꿈을 가지고는 진리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영생 생명 내세는 먼 훗날 이야기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정확한 답변을 들었으면서도 소유로 돌아간다. 이 청년이 나중에 늙어 몇살즈음 진리로 돌아왔을까 궁금하다. 그 청년이 부를 잃었는지, 죽음을 앞두고 깨닫는지는 모른다. 우리의 삶이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말씀이 들려올 때 깨달아야 한다.
부자가 천국에 왜 못갑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바늘귀는 예루살렘의 문을 뜻한다. 낮에는 열어두지만 밤에는 적들의 입성을 막기 위해서 닫는다. 길을 가다보면 늦게 도착하면 성밖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이에 모든 재산을 밖에 두고 몸만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있다. 그 문이 바로 바늘귀 문이다. 성문이 열렸을 때는 못들어오고 성문이 닫힌 밤에야 겨우 도착하였다. 욕심인지 노는 재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정해진 시간에 들어오질 못했다.
할아버지가 여행을 가서 피곤하여 잠이 깊히 들었다.
사람들이 깨우자 서둘러 짐을 꾸려 관광버스에 탔다. 아침을 버스 안에서 먹는다. 이 할아버지는 도시락을 폈는데 그 때에야 틀니를 세면대에 빼놓은 것을 겨우 기억한다. 가이드에게 겨우 연락하여 호텔에서 한국 주소로 보냈다. 사람보다는 틀니가 먼저 도착하여 한국의 집에서는 놀란다.
사람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구원의 의미,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 구원받는 사람이다. 천국문이 열렸을 때 현재 지금 이 자리에서 깊은 진리를 깨닫자.
존재의 의미를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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