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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70917 작아지는 행복

작아지는 행복

 

170917                                                     조원형목사님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에베소서 3:7~13)

 

사람의 마음을 평생 연구한 세들러가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한마디로 평한다. 인간 내면의 고칠 수 없는 고독 4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우주적 고독이다. 빛이 있기에 우주를 보고 느낀다. 인간은 고독 속에서 태어나고 그 속의 고독을 모두 채워주는 이는 없다. 동반자살을 하여도 결국 혼자만의 죽음이다.이 고독을 하나님밖에는 채울 수 없다.

둘째, 문화적 차원의 고독이다. 익숙함 속에서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 경험 체험만으로 멈추지 않고 발전한다. 새로운 변화를 싫어하면서도 바라고 시도한다. 그 속에서 고독이 발생한다. 옛날엔 신랑신부의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였지만 교제 연애 시대에 와서 그 옛날 부모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이제는 임신 후 결혼이 혼전 임신이 결혼 선물이다. 세대차의 고독이다.

세째, 사회적 차원의 고독이다. 사회 구조가 수시로 바뀌고 변한다. 어떤 직장 직업이라도 그 연한은 4년이라 한다. 늘 자기를 개척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누락 탈락 도태된다.

네째는, 인간 관계에서의 고독이다. 어렸을 때 젊었을 때는 모른다. 나이들면서 소외당해감을 느낀다. 자식을 출가시켰다. 그러면서도 자식 걱정에 꿈자리에까지 나온다. 걱정하는마음에 한밤중에 전화하니 오히려 핀잔을 듣는다. 옛날의 친밀감이 소외감으로 변한다.

 

인간은 고독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가 되므로 이 고독조차 복으로 생각해야 한다.

부부 싸움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며 격해진다. 그리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이를 깨닫고 격한 음성을 낮추고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결국은 싸움이 멈춘다. 자신의 자존심이 꺽이면 더 격해지지만 스스로 낮추면 그 마음이 평안해진다.

 

탈무드에서 랍비가 제자 3명에게 질문한다. 길에서 보석함을 줏었다면 어떡하겠느냐.

먼저, 내 자신이 보석함을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하나님의 기회, 선물로 생각하겠다 한다. 그러니 랍비의 말이 자네는 도둑놈이라 한다.

둘째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내가 궁핍해도 정직한 마음으로 주인에게 돌려주겠다 한다. 랍비의 대답이 자네는 바보일세 한다.

세째의 대답이, 제 마음이 흔들릴겁니다. 그런 횡제를 만나면 돌려주겠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나 자신은 모르겠습니다 한다. 이에 랍비가 네가 정답을 말했다 한다.

내가 그 형편에 처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다.

 

일본 고베 지진 이전에는 건물을 지어온 일본인들이 지진을 대비해서 짓는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고베 지진이 일어나 모든 것이 무너졌다. 옛날에는 좌우로 흔들려 대비했는데 고베 지진 때에는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누구도 인생 삶에 있어서 모든 대비를 하지 못한다. 그 형편에 가보아야만 한다. 연약한 존재로서 하나님께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물애호가들이 맹수일지라도 사라져가는 짐승들을 보며 도움을 준다. 그런데 그 동물들은 자신을 위한 은혜를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기억하고 도움을 기억한다. 어거스틴은 사람이 죄를 짓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긍휼 배려 때문이라 한다. 사람이 극한 상황일 때에야 자신을 파악한다.

 

사울 왕이 작은 자로 자신을 여길 때 왕으로 세움받았는데 왕이 되어 대단한 존재로 교만하게 될 때 선지자도 속이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모세도 맨처음엔 저는 못합니다 겸손해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로서 이스라엘의 주가 된 것처럼 불손한 자가 되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본문에서 묻는다.

어린아이같은 사람이라 한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는 관계치 않는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 그런데 자라면서 제 갈 길을 요구하고 나중엔 부모를 수하의 사람으로 여기고 군림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더 작아지는 자가 행복이라 말씀한다.

 

사람은 세상 것으로 고독을 채우지는 못한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 하지만 사람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 겸손이 깨달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아만도 나라의 공로자로서 거만한 자였지만 엘리사 앞에서는 작은 자 겸손한 자가 된다. 사울은 작은 자이지만 희망이란 뜻ㅇ다. 꼬맹이, 밤톨로 불렸던 사울이 하나님을 만나고는 맞다 한다. 바울로 이름을 바꾸면서 작은 자로 더욱 겸손해진다.

 

작은 자로 더욱 겸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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