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아야 할 세번의 기회
180114 주안장로교회 김현곤목사님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4:18~22)
한국 속담에 '행차뒤에 나팔분다' '소읽고 외양간 고치기' '등등 기회를 놓친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한가. 메리엔 리포트사의 여사장의 말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보통은 기회를 기회로 여기지 않는다. 기회는 모두에게 다가오지만 지나가고 나서야 깨닫는다.
신앙의 기회 3개중 에서 한번은 잡으신 분들이기에 여기 예배에 왔다. 본문에서는 특별한 기회를 붙잡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은 성공하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다가온다. 자식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 것을 후회한다는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를 본다. 지금의 심정으로서는 그 때로 돌아가면 축하하고 격려하겠다지만 당시 반대한 일로 인하여 지금까지도 아들과 서먹해졌기 때문이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 식으면 소용이 없다. 달궈졌을 때 두드려야 변화가 있다.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은 어부들을 부르신다.
첫째 부르심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구원의 기회이다. 나를 따라오라 부르신다. 구원의 기회이다. 우리는 그 기회를 만났다. 모든 인류에게 부르시는 평등한 부르심이다. 범죄한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부르심에 오히려 두려움으로 숨고 핑게를 댄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듯 용서의 기회를 놓친다.
마음도 육체도 피곤한 이 세상을 산다. 새해 결심을 해 보아도 이 세상의 피난처는 없다. 그러한 우리에게 부르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부르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담당해 주신다. 책임져 주신다. 주님 앞에 나오는 길만이 용서와 긍휼의 기회이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탄의 결박에서 풀려날 힘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회는 소멸되지 않는다.
두번째로 부르심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 하신다.
사명의 기회이다. 유익과 축복의 기회이다. 구원 사역의 기회이다. 호주인 마리언 선교사는 한국 신경정신과 의사이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선교사이다.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한국에 와서 30여년을 봉사한다. 사명자로의 부르심이다.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한다.
사명의 기회를 잡으면 주를 위해 살고자 한다. 기쁨이 넘친다. 교회에서도 새로운 사명자로 임명을 맡았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최선을 다한다. 올 한해도 최선을 다하자.
세번째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헌신할 수 있는 부르심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의 삶을 산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한다. 어부에게 배와 그물은 자신들의 모든 것이다. 즉시 그것들을 버렸다. 헌신의 길로 나섰다.
사람은 양쪽을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 한쪽을 잘 잡아야 모든 것이 뒤따른다. 그 기회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지금이 중요하다. 곧 예수를 쫒았다. 즉시 쫒았다.
이 세상의 것들을 붙잡는 것이 행과 불행을 좌우한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 붙잡은 것들이 사라진다.
맹의순은 1926년 평양 장대현교회 맹관호 장로의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공립제2중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마치기 전 누님과 형님이 먼저 세상을 뜨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해에 어머니와 여동생마저 세상을 뜬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조선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학부 3학년 재학 중 6·25전쟁을 맞아 피난길에 오르던 중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지만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수용소 내 광야교회를 세워 사랑을 실천한다. 1952년 석방 사흘 전 27살에 뇌암(뇌막염)으로 소천했다.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참고-
선생은 평양 장태현 교회 맹관호 장로의 아들이었다. 부친 맹장로는 평양의 소문난 부자였다. 그의 가족은 6.25전에 서울로 월남하였다. 그는 Y 전문학교 신과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목사가 되기 위해 조선 신학교로 편입히였다. 그리고 서울역앞 N 교회 중등부를 맡아서 봉사하였다. 그러던 중 6.25가 터져 남쪽으로 피난가던 길목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최전선 2마일 안에서 잡힌 사람은 피난민이건 학생이건 간에 모두 포로로 취급하였다. 이유없이 그는 거제도 포로 수용소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공군 환자들을 돌보아주다 석방을 앞둔채 쓰러져 죽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포로 수용소의 밀알이 되었다.
다음은 그의 도움을 받았던 중공군 포로 환자들이 그의 죽음을 추도하는 글이다.
맹의순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인이셨던 맹의순 선생이 가시다니,
오늘밤, 귀교회에서 우리의 위로자였고 사랑과 존경의 표적이었던 맹선생의 추도 예배를 드린다기에 우리 모든 사람의 뜻을 모아 서둘러서 이 글월을 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포로의 옷을 입은 그가 미국 군인 의사들을 도우며 우리의 병동을 찾아오던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했고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늘 온화했고 우리를 돕는 그의 행동은 희생정신으로 언제나 꾸밈없이 여일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대개가 그 무엇인가에 대해서 몹시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나라에 대해서도 특별한 생각을 가질 줄 몰랐습니다. 그저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고, 우리를 전장에 보낸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을 죽도록 원망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맹선생은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동료 중에 글씨를 전혀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일일이 글씨를 가르쳐가며 선생은 찬미가를 불러주셨고 나무 십자가를 안고 다니며 그 뜻을 성심껏 전해주셨습니다.
선생은 새벽 한시, 두시면 늘 병동으로 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치료와 간병을 맡았던 사람들도 모두 물러가고 나서 중환자들이 심하고 무거운 고통에 짓눌리는 그 시간에 선생은 고통을 다스리는 천사로 우리들 앞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하늘이 보낸 천사였습니다.
깊은 밤 신음 소리가 낙수처럼 쏟아질 때 선생은 인자의 큰 그릇이 되어 우리들의 온갖 고통과 신음을 다 받아 담고 고통과 신음을 들어 냄으로써 하나하나 편안히 잠들도록 잠재워 주는 천사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한 손에는 성경책이, 그리고 다른 손에는 물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골고루 만져주고 주물러주면서 그렇게도 간절하게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기승하던 고통이 스러지고 신음과 함께 목이 타서 잠못이루던 육체가 편안한 잠의 품에 안기게 되고는 하였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물로 여름이면 시원한 물로 우리들의 얼굴을 씻어 주고 손을 닦아 주십니다. 때로는 발도 씻겨 주십니다. 넉넉치 않은 수건을 정성껏 깨끗하게 빨아가며 한 사람 한 사람 고루 씻어주십니다.
선생의 손에는 신비한 힘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손이 얼굴에 닿으면 시원하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선생이 발을 씻겨주시면 천상에나 오른 것처럼 평화로워지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염치없이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그분의 손으로 씻기는 것을 바랬습니다. 선생은 우리의 더러원진 육체를 구석구석 닦아 주시면서 그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직하게 노래하고는 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 노래는 천사의 옷깃을 스치는 소리같기도 했고, 천사가 안고 있는 하늘나라의 악기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선생에게서 사랑의 신이 계시다는 것을 보고 깨닫고 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별로 불편해 할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은 잘 사는 사람 몇몇이 우리들의 기회를 다 빼앗아 저들만 기름지게 살고 우리는 가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모택동의 깃발아래 공산주의만 잘 하면 잘 살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미국이나 구라파에 있는 몇몇나라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포로가 되었고 그렇게 되고 보니 쓰레기 같은 낡은 누더기로 무장돤 총받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붙잡혀 포로가 되고, 팔 잘린 자, 다리 잘린 자, 눈 잃은 자, 살점이 달아난 자, 동상으로 살이 문드러진 자가 되어 적군의 손으로 치료를 받은 신세가 된 것입니다. 될대로 되라는 심사와 끝없는 원망과 증오가 굳어져서 우리의 마음은 깜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맹선생이 오셨습니다. 맹선생의 숨결은 우리의 그 두꺼운 껍데리를 녹여주셨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고 두껍고 어둡던 그 마음의 문을 기도와 찬미와 손을 대어 만져 주던 그 사랑으로 녹게 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따듯함이 철문이 되어 단단하게 빗장 질러졌던 우리의 마음을 따듯하게 덥혀주시고 빗장이 풀리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의 시작이 예수 그 분임을 알았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죄의 모양이고 내 죄로 해서 예수가 그 위에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한국말을 알고 있는 동료가 그분의 말씀을 통역하거나 옮겨 베껴서 우리가 성경을 배우게 했고 찬미가도 부르게 해주었습니다.
맹선생이 지켜 주시는 밤은 어둠이 아니었습니다. 맹선생이 함께 하시는 밤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은 우리를 공격하려는 고통을 막아 주시는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우리를 낙담케 하는 외로움을 쫓아주시던 파수꾼이었습니다.
우리는 포로의 신세가 되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가 하고 통탄을 했었습니다. 이 낯선 땅 엉뚱한 곳에서 우리가 왜 포로로 남겨져야 하는 것인지 기가 막힐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맹선생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께 가르침을 받은 후에 우리들 몇 사람은 기쁘고 신기한 놀라움에 이따금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합니다.
중공 땅에서 복음이 지워지고 그 담장이 하늘 끝까지 닿을 만큼 높고 두꺼워지자, 하느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일 몇사람을 위해서 우리를 이 땅으로 밀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의 총부리를 한국 사람에게 들이대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 복음의 생명수를 받아 마시기 위해서 보내어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누가 무어라 하여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8월 11일 새벽에도 선생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몇몇 사람은 잠이 들어있었지만 우리들은 거의 다 선생께서 석방되시리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기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통과 성경책 그리고 번역한 찬송가를 베껴 쓴 종이 한 묶음을 들고 오셨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종이를 나누어 주시고 종이 말미에 적힌 대로 내일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침대 머리에 꿇어 앉아 그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중환자들 한테 가셔서는 얼굴 씻기고 발 씻기는 일을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하셨습니다. 선생은 환자들을 씻겨 주시면서 베껴서 나누어 주신 찬송가를 나직하게 부르셨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느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서 인도하며 도와 주시기를 바라네. 위태한 일 면케 하고 품어 주시기를 바라네. 주의 크신 사랑 안에 지켜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우리 서로 만날 때,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주님 함께 계심 바라네."우리는 그 곡조를 배워가며 조금씩 따라 불렀습니다.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중환자를 씻기시며 울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따라 울었습니다.
전쟁이 나던 해 그 해 초 겨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빠지는 일 없이 이 낯설고 말 안 통하는 이국인들의 병실을 찾아 주신 분, 이제 우리가 그 분을 잃는다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선생은 석방이 되셔도 이 곳에서 일 할수있는 길을 찾아본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암담했습니다.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23편을 우리 말로 더듬더듬 읽어주셨습니다. 선생은 그 성경 말씀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베껴 가지고 계셨고 틈틈히 우리에게 읽어 들려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말씀을 따라 외웠습니다. "내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얼굴의 화평함이 우리를 안위해 주었습니다.
그 평화의 미소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선생은 마지막 환자를 씻겨낸 물통과 대야를 들고 일어나셨습니다.
그 순간 어딘지 먼 곳을 향해 높고 높은 그 곳을 바라보며 남겨 두고 가시는 우리들을 부탁하는 듯 높은 곳을 바라보시던 그대로 그 자리게 쓰러지셨습니다.
미국인 의사들이 달려오고 앰불런스가 와서 선생을 실어간 뒤 우리는 자책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염치없는 우리들이 선생의 생명을 빼았았다. 우리가 선생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그 아침이 다 밝아 일과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선생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사랑의 신 예수께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했으나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선생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맹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면 맹선생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나셨는지도 모르겟습니다. 십자가의 길 위에서만 우리는 맹선생과 함께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어디로 가든지 맹선생이 주신 그 사랑을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그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잇습니다.
우리는 통곡합니다. 우리는 통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맹선생과 함께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거제리 포로 수용소 중공군 병동의 환자들 일동
(정연희의 "내잔이 넘치나이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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