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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그 외 자료

171203 물동이를 버리고

물동이를 버리고


171203                           박재덕목사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4:27~42)


사마리아 여인, 우물가의 여인에 대하여 온전히 예배하는 방식을 배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당시에는 장소의 문제로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사마리아인은 그리심산이요 유대인은 예루살렘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소의 개념이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함을 말씀한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만나는 과정을 말씀한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맨처음엔 예수님을 랍비나 선지자로 만났다. 우리도 일생일대의 경험으로, 추억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적당히 믿으면 된다, 깊이 믿으면 피곤하다, 추억으로 간직하면 좋겠다 한다. 선지자 중의 하나로 여겼기 때문이다. 직분을 맡는 것도 나의 추억 경험으로 생각한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생각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고 오경만을 믿었다.

메시아에 대한 인식에서 예수님은 '내가 바로 그'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달라지는 여인의 모습을 본다. 인격이 바뀌고 삶이 달라진다.


여인의 달라진 행동이 있다.

먼저 목마름이 있어 우물가에 나와서 물동이를 채우려 하였으나 그 물동이를 버렸다. 기록된 정오 또는 저녁6시의 시각에는 사람이 오질 않는 시각이었다. 즉 사람 눈을 피했다는 뜻이다. 그런 그녀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돌아가 동네 사람에게 알린다. 물동이로 물을 깃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을 발견한 것이다. 동네로 돌아가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냐... 주춤하는듯한 말이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동네 사람에게 알린다. 그것이 믿음이다.


내가 모든 것을 놔두고 예수님께로 나오는 모습, 그것이 예배이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분임을 확신하였기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 사람에게 달려가서 와서 보라 그가 메시야가 아니냐 말한다. 남편은 다섯이지만 여인의 삶은 수치스럽고 버림받은 여인이었다. 눈을 피했던 여인이 동네 사람에게 달려가 자기의 수치를 내놓는다. 지금의 남편도 내 남편이 아니라 고백한다. 죄사함의 비결이다.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되면 더이상 수치가 아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모든이에게 알린다.


그 말을 들은 수가성 사람들도 놀랐다.

와서 보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틀을 더 유해달라고 청한다. 이제는 여인에게서 말을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받아들였다. 참으로 세상의 구주심을 알리라 고백한다. 우리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문 밖으로 나갔을 때 예수님이 구주심을 알리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온전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