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기 합당한 믿음
171119 주안장로교회 조영창목사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11~19)
예전 유머로 사오정 시리즈가 있다.
교장이 학생들에게 훈화한다. 학교 밖에서 학교를 욕하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 한다. 이에 사오정이 짐승만이 누구냐고 묻는다. 영어로 공기를 에어라 하고 물은 뭐라 하느냐 하니 사오정이 셀프라 대답한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합당한 반응이 중요하다.
본문에서 문둥병이 나은 10명중에 합당한 반응을 한 사람은 한명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칭함을 받는다.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직전의 관문으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는 과정이었다. 유대땅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 일부러 북쪽 땅 사마리아와 갈릴리를 지나가신 이유는 한명이라도 더 전도하시기 위함이었는데 10명의 나병 환자를 만난 것이다. 구약의 율법으로는 나병환자를 부정한 자로 규정하였기에 사회적으로 격리된 삶을 살았다. 그곳을 예수님은 지나가시는 것이다.
사회적 격리를 당한 분둥병 환자들이 예수님 오시는 소식을 들은 것은 생계 수단이 구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사람에게 가까이 올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소문을 듣고 또 지나는모습을 보고 멀리서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에 예수님은 가까이 가지 않으시고 멀리서서 대답하신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 이 말씀 또한 율법에 의거한 것이다. 제사장이 당시 의사, 판사 역할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너희 몸이 나을 것이라 약속하신 것과 다름없다. 결국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고 있을 때 나병이 나았다.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 뿐인데 기적을 체험한다. 본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10명중 한 사람의 반응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로 돌아온다.
이 한사람의 반응이다.
첫째,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찬양하는 것이다.
둘째, 제사장에게 가는 길을 돌이켜서 예수님께로 돌아온다. 대부분 사람은 가던 길을 계속하여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확인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 돌아온다.
세째, 예수님께 돌아와서 얼굴을 땅에 대며 엎드린다. 최고의 존경의 표시이다.
네째, 예수님께 감사한다.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께 또 예수님께 감사한다.
이 반응을 보시고 믿음이란 단어를 쓰신다.
10명중 1명만 합당한 믿음으로 인정하신다. 이 사람이 사마리아인이다. 앗수르와 전쟁후 국경의 사마리아 땅에 혼혈족이 많았기에 혈통을 중시한 유대인들이 멸시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돌아서 먼길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했다. 이런 사마리아 사람만이 유대인 예수님께 찾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10명 모두 치유받았음을 알고 계시다. 나버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없느냐는 말씀은 나머지 아홉이 유대인임을 말씀하신다. 이 사마리아인의 반응은 하나님께 돌아와서 영광돌리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이를 높게 평가하신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신다. 이제 일어나서 제사장에게로 가고 가족에게로, 고향에게로 돌아가라. 네 몸 뿐 아니라 네 영혼도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믿음과 구원의 말씀이다
구원받기 합당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아홉의 유대인들은믿음은 있었다. 예수님을 찾아 소리질러 간청하고 나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고 제사장에게로 가는 순종도 있었다.그러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 이는 반응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각한 병에 걸리면 기도도 하지만 평판을 통하여 의술이 유명한 병원을 찾아간다. 열명의 나병 환자와 다를 바 없다.
순종하고 처방받는다. 그러면서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응의 차이이다. 반응이 결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정의 반응, 인정의 행동이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믿음이다. 하나님께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렸다. 즉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과 최고의 존경을 표했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멀리서 소리질렀으나 예수님 바로 앞에서 발 아래 엎드렸다. 존경을 표시했다. 제사장의 역할은 사라졌다. 제사장보다도 예수님 만난 것이 더 중요하다.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 하자 이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가 하나님을 보았다 말씀하신다. 이 나음받은 나병 환자 한명이 하나님을 본 것이다. 나머지 9명은 예수님이 선생님 또는 의사에 불과하다. 나음을 받고도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은 삶을 산다. 치유받는 믿음으로는 구원받는 믿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면이다. 구원받기에 합당한 믿음이어야 한다.
둘째, 두번째 반응은 예수님께 감사하는 믿음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한다. 돌아와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다.
나병 환자로서 가지고 있는 고통, 마을과 가족에게서 떨어져야 하는 차별의 고통도 있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유대인과 동일한 대접을 받으며 나음을 입었다. 감사와 감격이 넘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내 스스로 남보다도 더한 고통과 고독이 있어도 나음을 입고는 하나님께 더 큰 감사와 영광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자. 고통을 이겨내자. 예수님을 초청한 주인은 물로서 예수님 발을 씻겼지만 예수님 발 아래 향유를 부은 여인도 마찬가지이다. 부정한 이 여인의 일을 시몬에게 말씀한다.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많이 감사한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은 마음의 고통이 적기 때문이다. 신학에 들어오는 분들이 대부분 어려움을 크게 겪은 분들이다. 더 큰 감사와 감격이 있기에 들어온다.
치유받는 믿음이 아니라 응답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원받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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