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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81230 대신 깨우쳐라

대신 깨우쳐라


181230                               조원형목사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에스겔 3:16~21)


우리나라 남쪽에는 사이판 티니언 로타 괌 등의 섬이 있다.

괌에는 관광객들이 들르는 동굴 하나가 있다. 평범하고 작은 동굴에 들르는 이유는 일본의 2차대전 후 패잔병이 27년간 살았기 때문이다. 1945년에 독립하고 일본은 미국에 패배하는 그 때에 한 병사가 괌에 갔다가 도망다니며 혼자서 거처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을 피해서 27년간 살았다. 이 병사가 원주민에게 발견되며 문명사회로 나온다. 전쟁이 끝나서 모든 나라가 소통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늘의 비행기도 전쟁 상황에서 폭격기로 오인하여 숨었다. 여객기도 폭격기로 오인했다.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식을 듣지 못하여 사람과 사회와 단절되었다가 대략 1972년도에 발견되었다. 지금도 괌에는 일본군이 가졌던 소총 하나와 군복 한벌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듣는다는 것, 기쁜 소식 반가운 소식 구원의 소식을 듣는다는 것, 유황겔리온(기쁜 소식)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와 소식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외부의 소식을 듣기 위해 모였었는데 지금은 매스컴을 통해 듣지만 정작 구원의 소식은 듣지 못한다. 본문 에스겔에게 의인 악인 공포에 떠는 이에게도 전하라는 말씀이다.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의인이 잘못하고 있을 때에도 알려줘야 한다. 1년을 결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받아들이고 깨우치지 않아서 내 스스로 의인이요 충성하는 이로 착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죄가 크다.


우리는 얼마나 깨우치고 있고 이웃을 깨우치고 있는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신다. 그 지침이 있다. 먼저, 다른이는 모두 자더라도 나는 깨어있어야 한다. 둘째, 파수꾼은 보초병이다.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 세째,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눈이 침침하거나 들리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늘 깨어있고 건강하기 위해서 관리하고 기도해야 한다.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대로 충동해도 안된다. 나쁜 소식, 흥분하고 분통터지는 소식을 들어도 자기를 관리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전하는데 나와 원한 관계에 있는 이에게도 전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전해야 한다. 내 나쁜 감정을 모두 벼려야 한다. 내 아픈 상처 감정을 버려야 한다. 요나처럼 피하지 말고 나단처럼 다윗에게 전하는 것이다. 좋은 말은 전하지말라해도 전하지만 나쁜 말도 쏘아내는 심정이 아니라 충정의 마음으로 전해야 한다. 목적은 깨우치는 것인데 상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고 전할 수 있을까. 나단은 비유를 들어서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다윗에게 전했다. 방법이 없을 때는 에스더처럼 아픈 마음으로 금식후에 전했다.


엘리 제사장은 왜 망했을까. 아들들의 범죄를 말리지 않았다. 엘리에게 부족한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아픈 마음이 없었다.

바른 소리 옳은 소리는  했지만 사랑이 부족했다. 깨우쳐지지 않았다. 열정 정의 법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책망도 있었다. 그러나 아픈 마음, 긍휼이 없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으로서 선한 사마리아인과 제사장과 레위인의 비유이다.

바쁜 것은 모두 동일하다. 모두 자신의 삶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색하며 찾아내는 것은 사마리아인을 제외하고는 사랑이 없었다. 강도당한 이는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왜 가는가. 강도만난 것이 당연하고 잘되었다는  것이 사회 현상이다. 결국 제사장과 레위인이 정죄한 것이다. 원리원칙을 따져서 사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긍휼없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바리새인 레위인 제사장이 모두 그러했다. 돌로 때려 죽이고 추방한 것 그대로 자신도 결국 심판받는다. 교회를 섬기면서 원리원칙이 아니라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인 장사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목사가 예배드리기 위해 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먼저 교회에 연락하고 사건사고를 조치해야 한다. 이 장사꾼은 이득을 위해 손해보고 판다면서 남을 속이는 경우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선하다 칭함은 긍휼을 가졌기 때문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니까 나와 상관없는 이에게 돈을 쓰는 것이다.

1년을 결산하며 열정 충정 원리원칙도 중요하지만 사랑과 긍휼이 필요하다.


'슈퍼스타' 영화에서 유다가 자살하여 죽는다.

그 영혼이 떠돌아다니며 말한다. 왜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십자가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관습으로 옛 방법으로 인해 유다가 듣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잘 섬겨온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는 원리원칙주의자여서 예수님이 믿고 돈까지 맡겼다. 그러나 유다는 혁명주의자로서 그걸 버리지 못했다. 예수님의 긍휼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생각 주관 관습 지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

나 자신 뿐 아니라 다른이들을 깨우치는 선구자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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