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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81223 구원을 본 감격

구원을 본 감격


181223                        조원형목사님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누가복음 2:25~35)


두 종류의 그림같은 현실이다.

델 카네기 사무실에 걸린 그림 한폭이다. 서해안 갯벌이 드러나는 장소에 오래된 배 한척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그림이다.

또 하나는 태종대에 보이는 망부석이라는 돌이다.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이 끝내 망부석이 되었다. 이걸 사진으로 찍은 그림이다.

델 카네기 그림 밑에는 "밀물은 반드시 온다"고 써있다. 버려진듯한 고깃배는 반드시 뜬다는 것이다. 그런데 망부석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어디까지 믿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창조하신 자연은 창세부터 지금까지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다.

이 자연은 사람과 마찬가지의 피조물인데도 불구하고...


심리학자 윌리엄마스틴이 3천명을 조사한 결과 일생일과의 마음가짐 94%가 기다림이라 말한다.

내일, 훗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사는가. 베이징 대학의 한 교수가 쓴 글이다. 현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꿈, 희망이다. 옛날엔 소망이라 하였지만 지금은 희망으로 다시 꿈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의미가 다르다. 희망은 나의 바램이고 스스로의 기대치이다. 소망은 약속있는 바램이요 그 약속에 대한 기대치이다. 우리는 어떤 기대치, 어떤 꿈을 가지고 사는가.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 믿음 소망 사랑의 단어가 나온다.

믿음은 내 스스로 가지는 확신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말씀한다. 소망은 희망이 아니다. 내 바램이 아니다. 소망은 약속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기대치이다.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내 가슴으로는 용서가 안되지만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약속하셨다.. 사색과 수련과 철학을 통해 믿는 종교가 아니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본문 말씀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다.

요셉이 감옥속에서도, 나사로가 문앞에서 개가 피부를 핥으며 구걸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사랑에는 하나님의 긍휼 용서가 들어있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믿기어진다. 그리하여 기대감과 확신 속에서 우리는 산다.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 신앙 주체의 전부이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 죄인을 보증시켜주신다.


소설가 토마드 하디의 "환상의 여인"이란  책이 있다.

꿈의 여인, 망상의 여인으로도 해석한다. 한 여인이 한 시인을 동경한다. 남편이 있는 여인이다.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시인을 닮았다. 그런데 남편이 오해하지만 아니다. 한 여인이 사람을 미워해도 그 사람을 닮는 아이를 낳는다. 꿈과 기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대칭되는 두가지가 보인다.

메시야 대망 사상과 메시야 시대에 대한 기대 사상이다. 메시야가 오셔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오해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 시대에 대한 대망 사상이었다. 가족을 기다리는데 살아서만이라도 돌아오라는 것이 진실된 기대인데 그 가족이 돌아오면 그가 부유함을 가지고 내가 편히 살리라는 기대 사상으로서 서로가 다르다. 로마 압제 시대에 메시야가 오시면 해방 평화가 오리라 기대했는데 고난만 당하시는 메시야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다. 예수님을 믿어도 잘 살아지질 않으니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잘 되리라 잘 풀리리라 기대하면 시험에 든다. 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나.


오늘 시므온도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만난다.

세례 요한도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메시야가 고난을 받으니까 혹시 다른 메시야가 있는 것이 아닌가 갈등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본문의 메시야는 고난당하러, 십자가를 지러 오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인데 칼이 네 마음을 찌르는듯 하리라 예언한다. 예수님의 고난 때문이다. 시므온은 알았다. 기도하는 사람은 안다. 예수님이 오시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리라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심을 발견한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면 세상을 호령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고난중인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깨닫는다. 요셉도 나중에서야 하나님이 애굽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는다.


본문에서 구원을 본 시므온의 감격이다.

먼저, 정말 예수님을 만났는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본다. 그는 경건하게 산다.

둘째, 성전 중심으로 산다. 레위인은 성전 중심으로 기대했지만 시므온은 성전중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본다.

세째, 성령이 깨달음을 주신다.


영화제작자와 역사소설가가 만난다. 헤피 엔딩이 존재하는가 토론한다.

영화제작자는 있다 하지만 역사소설가는 없다 한다. 영화에는 있지만 현실에는 없다. 인생에는 끝까지 해피엔딩이 없다. 그 속에서도 임마누엘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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