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인생길
98116 조돈환목사님
누가복음 24:13-16, 30-35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의 부활사건이다.
부활하신 그 날 아침 예루살렘에서 24KM 떨어진 엠마오로 두 제자가 내려갔다. 부활 소식은 들었으나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 예수님이 동행, 대화하셨으나 알아보지 못하였다. 절망하면서 갔다. 3년씩이나 쫓아다녔으나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도중이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3년간 천국을 소개하셨다. 예수님은 천국 가는 길이시며육체가 영체로 변하는 휴거의 주인이시며 생명이시다. 도덕, 교훈을 가르친 선생은 죽으나 도덕, 교훈은 남아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나라로 데려가시겠다고 약속하신 주인이시다. 그 증거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약속이시다. 예수님이 살아계신 동안은 진리이시다. 그러나 예수님, 바로 약속하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다. 따라서 약속도 죽어 폐기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절망이다. 3년간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고향도 버리고 인생을 걸었으나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희망이 절망으로 변한 것이다.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무효화된 것이다. 따라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가 죽자. 3년의 허송 세월을 생각한 것이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동행하셨다. 함께 가셨다. 예수님에 관한 예기를 하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절망의 눈으로는 보지 못한다. 구약 성경 말씀에 “메시아가 고난의 종으로 반드시 죽어야 부활하리라.” 그 비유에 감격하여도 두 제자는 절망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의 경건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100세에도(사라 90세) 이삭을 낳았다. 경수가 끊어졌어도 하나님께서 주심으로 아들을 얻었다. 하나님은 희망이시며 믿음의 본이시다.
선생님 날이 저물었으니 강권하여 예수님을 초청한다. 떡이 나옴으로 예수님께서 축사하신다. 육신뿐 아니라 영도 살게 하소서. 희망의 떡을 받았을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본 것이다. 이성의 눈으로는 뜨거워질 수는 있어도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희망의 눈을 가져야 예수님을 알아본다. 희망의 예수님, 부활의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사심으로 다시 소망의 예루살렘을 향해 돌아선다. 부활의 소망을 본 사람은 절망의 땅에서 떠난다.
현시대는 말세이며 절망의 시대이다. 말세의 징조로서 자연의 변화를 보며 마지막 시대의 변두리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서도 부활과 희망의 예수님을 바라본다. 절망의 인생에서 희망의 인생으로 변화한다. 다시 살아난 예수님의 약속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서 전설이나 신화, 성서문학적이 아닌 사실로서 희망의 눈을 뜬다.
국가 경제 사회 몰락 가운데서 희망의 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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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for the asking
여기 나의 노래가 있습니다.
당신이 청하신다면 얼마든지
당신을 미소짓게 하겠습니다.
내 생애 기쁨보다 슬픔이 지배했지만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의 길은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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