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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주승중목사님

200913 딸아, 평안히 가라

딸아, 평안히 가라

 

200913                                     주승중목사

 

(마가복음 5:25~34)

 

예수님의 공생애중 죽은 사람을 살리는 세명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첫번째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 청년을 장례행렬에서 살리시고 두번째는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킨 사건이다. 세번째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사건이다.

 

오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끼어든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12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이다.

당시 지도자로서의 회당장 야이로가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는 말씀과 또 죽은 후 다시 살리시는 장면의 말씀 중간에 끼어든 이야기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 사이에 삽입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부정한 여인의 이야기가 그 사이에 있는가. 마가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이야기를 단숨에 말하지 아니하고 왜 보잘것 없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삽입하였나.

 

이 여인은 부정한 존재의 여인이었다. 그 병으로 인하여 심한 고통을 당했다.

12년동안 혈루증이다. 지속으로 하혈하는 부인병의 고통을 경험한다. 혈루증은 레위기에서는 병자뿐 아니라 접촉하는 자도 부정하게 생각하므로 옷으로 감싸고 냄새도 감추어야만 했다. 많은이들에게 감추어야 했고 나으려고 재산도 탕진했으나 병은 더 심해져만 갔다. 건강과 재산과 희망을 잃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신체의 고통,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고통,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으로서의 고통을 당했다. 그러한 그녀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마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지만 예수님의 많은 이적에 대하여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실날같은 희망을 가지고 옷자락만이라도 붙잡아 자신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겉옷을 만지니 겉옷을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표현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찾아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창백한 손을 내밀어 간절한 소망과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  즉시로 혈루증이 그쳤더라고 마가는 표현한다. 그녀는 자신이 치유되었음을 깨닫는다. 예수님 자신도 권능이 빠져나간 것을 알게 된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말씀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도중에 베드로가 대답한다. 누가 밀었겠지 어떻게 찾는가 대답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 그 여인을 찾는다. 그 여인이 숨을 수 없음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나간다. 스스로 숨기지 못함을 알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예수님께 자신임을 고백한다. 자신을 만지는 자조차 부정하다고 인정받는데 거꾸로 자신이 만졌기에 야단맞을 것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야단치 않으시고 그녀의 미래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딸아" 이 말은 가족임을 인정할 때 하는 표현이다. 한없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담겨있다.

 

의사였던 누가는 누가복음8:44에서 "옷가"를 만졌다고 표현한다. 옷 술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겉옷의 술은 권위를 상징한다. 그 술을 만지는 사람은 허락을 받은 사람과 가족만이 만질 수 있었다. 부정한 그녀는 만질 수 없는 것을 부정한 방법으로 허락없이 만졌다.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고 두려워 떨었으나 예수님은 "딸아" 부르신다. 상징적으로 무의미하게 부른 말이 아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부녀지간에 쓰는 말이다. 이는 예수님이 이미 용서하시고 나를 만질 수 있는 가족으로서 받아들이셨다는 말이다. 여기에 복음이 담겨있다.

 

"딸아, 평안히 가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후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녀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똑같은 대우를 받은 것이다. 초라한 여인이 예수님의 가족이 된 것이다. 이 여인의 이야기가 소외되고 고통받는 여인의 이야기가 동일하게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로 주님의 가족된 사람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야이로의 딸 이야기 도중에 나오게 된 것이다. 결국 주님의 사랑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거스틴의 표현처럼 하나님이 나만을 사랑하시듯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신다.

 

엄청난 고통과 시련중에서도 주님의 사랑의 자매 이야기가 있다.

최려나 자매이다. 그녀는 조선족 4세로서 중학교때 가스폭발로 모친이 죽고 95%화상으로 죽게 되었지만 계속 병원에서 치료받는다. 절망가운데 있는데 천진의 엘림교회 한 장로님이 찾아온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에 오히려 화만 났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나인가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런데 장로님이 주고간 성경책을 읽게 되었는데 한구절을 하루에 읽고 한 장을 가지고 한달동안 읽는데 한국의 광주에서 외과 의사가 또 그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초청한다. 무상으로 먹이고 입히며 치료해준다. 어느 날 교회 청년들이 축복하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찬양을 부른다. 이에 자신은 그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심을 안다면서 40여차례 수술을 받는다. 그래도 부끄러워 천으로 가리고 모자로 가리며 숨는데 당시 한동대 이지선 교수가 화상으로 치료받음을 보고 멘토로 삼아서 검정고시와 대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공부한다. 당시 대학을 졸업할 때 이지선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과 고백이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과 최려나자매를 받아주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받아주신다.

우리에게도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말씀하신다. 내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고 우울증으로 심각한 가운데 있지만 주님의 옷술을 만지는 사람을 주님은 찾고 계신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옷깃만 만졌어도 구원받았는데 하나님의 한 가족된 우리들이 주님의 옷깃뿐만 아니라 주님의 손을 꼭 잡자.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하실 때 내 자신이 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주님을 찾았다고 대답하자. 그리하면 주님께서 모든 문제에서 놓여 자유할 것이라 말씀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