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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10703 생명의 양식

생명의 양식

110703                                                                                                        조원형목사님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한복음 6:43~51)

 

못된 사람을 짐승과 같다, 짐승만 못하다고 말하지만 짐승중에는 사람보다 나은 것이 많다.

주인을 위해 충성한 짐승들 이야기나 이솝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성경에서도 나온다.

 

마가복음11:2~10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때에 나귀새끼 또는 새끼딸린 나귀, 또는 사람이 한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라 한다. 한마리이지만 제자들마다 보는 견해가 다르다.

예수께서 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신다.

훈련되거나 경험있는 나귀는 분명 아니다.

예수님이 처음 나귀를 타셨음에도 끝까지 소임을 다한 나귀이다.

군중들이 몰려나와 호산나 찬양을 하며 나뭇가지를 꺾어 난리를 쳤지만 니 나귀는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받은 나귀처럼 끝까지 사명을 다했다. 기적의 충성이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이 겸손한 이 나귀를 선택하셨을 것이다. 중간에 마음을 고쳐먹어 겸손해진 사람도 있지만 겸손한 사람이 끝까지 겸손하다. 병들고 약한 사람, 높은 사람도 겸손해 보일 수 있지만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안다. 자신은 허물투성이, 죄인투성이지만 귀히 쓰여짐을 안다.

구약의 제물된 양의 모습이나 신약의 제물되신 예수님이 그 겸손의 표본이다.

 

성경의 비밀은 겸손한 자가 제물이 되고 주의 일에 쓰여질 수 있다.

겸손은 가난한 자이며 심령이 겸비한 자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배부른 은혜를 받을 것이다. 심령이가난한 자, 겸비한 자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신다.

오늘의 성경 주제이다.

 

시인 괴테는 "행복한 사람"에서 자기 일생을 바칠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 평생의 직업은 신앙이다. 이 신앙은 곧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기업이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기업으로 여기신다. 예수님 자신을 찢어 십자가에 매달리시어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리고 괴테는 일하고 나서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불행하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봉사 헌신 충성할수록 더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돈없고 건강잃고 부모잃은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고아이고 병들고 돈없이 살아도 하찮은 일이라도 신이 나서 하면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 예수님, 그 자녀가 되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다.

그러나 지쳐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학자들이 말한다.

먼저 자기주도적 일을 하기 때문이라 한다.

자기목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니 지친다. 결국 허망한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타인주도적 삶이다.

남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용된 자로서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세째, 분업화된 일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모르고 일부분만을 알기 때문에 보람이 적다.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을 보아야 힘이 생긴다. 인생도 부분만 보면 지친다. 그 이상의 세계를 볼 때 숨겨져 있는 사명과 보람을 안다. 땅과 육신의 일에 신령한 의미를 깨닫는다.

그러한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으나 그 의미를 모른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주시는 은혜, 긍휼, 은총을 몰랐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짐도 몰랐다. 말씀이 성령으로, 생수의 강으로 흘러내림을 몰랐다. 신령한 양식을 주시는 분이 이 땅에 오셨음을 몰랐다.

조상들이 만나를 먹고도 몰랐는데 너희 조상이 광야에서 불신으로 죽은 것처럼 너희도 이 생명의 떡인 나를 불신으로 죽으려 하느냐.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제자들을 모으시고 성만찬을 하셨다.

떡과 포도주의 의미만이 아니다.

성만찬의 시간이 예배의 시간이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예언의 말씀이 우리에게 신령한 양식이 되며 큰 힘이 되며 용기가 된다. 굶주린이가 먹음으로서 침침한 눈이 밝아지듯이 영적인 눈이 밝아진다. 우리 영혼과 이성의 양식이다. 우리의 예배이다.

 

예수님 부활하신 날, 안식후 첫날인 주일을 지킨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믿음으로 영적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신다.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과정속에서도, 시련속에서도 열매맺게 하시고 거두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시련속에서도 신앙은 더욱 굳어진다.

육체는 쇄퇴해지나 말씀의 은혜, 죄사함의 은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적인 힘을 얻는다.

맥추절은 감사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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