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히 쓰는 그릇
111106 조원형목사님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19~21)
무슨 일을 할 때 기초, 기반을 말한다. 신앙생활에도 3가지 기반, 기초가 있다.
먼저 인생관이다. 하나님의 종된 사람으로 사는 것,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받은 것이지만 사명은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이다.
둘째, 가치관이다. 사람이기에 육신과 영혼이 있다. 영육간에 있어 한가지를 선택한다면 영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세째, 세계관이다. 세상은 마귀가 휩쓰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임을 성경에 기록하지만 그 지도자의 지위를 인간은 지배자의 지위로 착각한다. 섬기는 자로서의, 지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섬김의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 동물을 지도한다는 의미보다는 돌본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동물만도 못한 인간, 성실한 믿음을 가진 인간이 믿음을 잃으면 세상에서 가장 추한 인간으로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워짐은 존경, 높임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낮아진, 겸손한 자리에서 사명을 다하는 신앙인이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식인종과 친해졌다. 세상에서의 전쟁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이 죽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추장이 묻는다. 필요할 때만 사람을 잡아먹지만 먹지도 않는 걸 왜 그렇게 죽이는가 되묻는다. 미개인만도 못하다.
중광 걸레스님은 나도 제일 추잡한 걸레라 자랑하듯 말한다. 하면서도 죽을 때에 괜히 왔다간다고 말한다. 지식인이면서도 삶의 의미를 모른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인생임을 깨닫지 못한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으셔서 지으셨다. 집에서 쓰는 그릇처럼 금, 은, 질그릇으로 각각 지으셨다. 그러나 그릇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주인을 위해 무엇이 담겨졌느냐가 더 중요하다. 성도들을 질그릇으로 표현한다. 이는 흙덩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흙으로 빚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또 흙집에 살도록 하셨다. 모든 육체가 흙이기 때문이다. 그 흙집에 보물이 담겨있다. 그 보배는 무엇인가. 복음이며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은그릇, 금그릇 등의 구분도 칠이 다르기 때문이며 근본은 흙이다. 흙집에 페인트칠한 것 뿐이다. 던져 깨어지면 모두가 흙이다. 대통령이나 부자나 가난한 이나 모두가 죽음앞에서는 똑같다.
나폴레옹 키가 155, 중국 등소평은 150cm이다.
등소평이 미국에 방문했을 때 이떻게 접견하는가 궁금해 했다. 등소평이 수평으로 손을 내미니 미 대통령은 허리를 굽혀 악수를 한다. 내가 키가 작아도 내 아래 1억3천의 백성을 둔 통치자라 말한다. 작은 거인이란 말이 그때에 나왔다.
본문에서 하나님앞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로마 황제의 부인인 황후가 지배받는 유대인을 보면서도 이스라엘 랍비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황후가 랍비를 초대하였는데 그 랍비는 추남이었다. 그렇게 귀한 것이 그렇게 천한 것에 담겨있음에 놀랐다고 황후가 말한다. 랍비가 묻는다. 로마의 황제가 마시는 술은 오지 항아리에 담는다고 황후가 대답하니 금은그릇에 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여 모든 술을 금은그릇에 담는다. 이에 술맛이 변하고 황후가 문책을 당한다. 이에 천한 그릇도 중요하게 쓰임을 일러주기 위함이라 랍비가 대답한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충성하기 위해서는 이떠한 그릇보다도 깨끗해야 한다. 죄짓지 않고 경건히, 기도생활과 무욕, 순수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교만하지 않고 늘 겸손히 쓰여지는 것이다. 보상심리때문에 더럽혀진다.
교회 일군으로서 경력, 자부심은 남에게 아픔을 주고 쓸모없는 그릇이 된다. 신앙인은 겸손하고 낮아져야 한다. 나를 낮추고 숨기는 것이다.
귀히 쓰이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며 겸손하고 낮아진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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