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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40216 왼손이 모르게 하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140216                                                                                 조원형목사님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4)

 

할렐루야축구단이 2006년 내쇼날 리그에서 우승을 했다. 다시 다른 팀들은 우승할 때마다 우승 수당이 주어졌지만 할렐루야 축구단은 사정이 어려워 받은 상금만으로 선수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팀 주장이 담당자에게 찾아와서 상금을 선수들에게만 주기로 하는 규칙이 있지만 팀원 모두에게 나누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공을 나눈다는 것은 신앙인들에게만 보여지는 현상으로 생각한다.

 

스피노자의 "윤리학" 저서에서 정욕, 명예욕, 탐욕을 일반인들은 병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집착이라는 중병을 일으키게 한다고 말한다. 방치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다. 사람의 인격을 죽이는 바이러스이다. 몰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즉 사람속에 숨어있는 죄의 근성, 원죄가 꿈틀대기 시작하여 죄의 노예가 되어 악을 저지르면서도 죄가 아닌 본능에 의한 자연인이라고 말한다.

 

신학적으로 죄의 원인이 되는 원죄이다.

가시나무의 뿌리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 근원은 가시나무의 씨앗에서 시작된다. 제 아무리 가시나무에 정성을 들여도 가시나무이다. 죄라는 것은 행동만이 죄가 아니다. 마음가짐에서 죄가 나온다.

 

영성신학자 톰슨은 "균형을 잃어버린 삶"에서 4가지 원인을 말한다.

먼저, 이성 중심적인 가치관이다.

이성의 가치관이 최고가 되어서는 안된다. 양심, 영성이 있다. 옳다고 판단되더라도 양심과 영성이 후원해 주어야만 한다. 이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경우엔 구제불능의 인간이 된다. 철면피하면서도 자신을 옳은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인생이 매몰된다. 이에 파스칼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박아라"고 말한다.옳은 줄로 알았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둘째는 기술의 진보가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한다.

삶의 기술이 윤택하게 하지만 대처 능력이 떨어지게 만든다. 아이들의 육체적 급성장이 잘못 이어짐을 본다. 영적 성숙이 함께 이어져야 한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서 이제는 흥부가 나쁘다고 말한다. 급성장에 의해 도덕관이 바뀐다. 성춘향 이야기도 이도령이 못났다고 한다. 사또가 능력있고 책임질 수 있다고도 한다. 돈 앞에서 급성장이 가치관을 흔든다.

세째는 피상적인 것이 가치관을 흔든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안목에 의해 자신의 가치관을 상실하고 남의 손에 놀아난다. 연예인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도 자주 본다.

네째는 소외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삶의 균형을 잃는다. 상대적 빈곤, 높은 곳에서부터의 추락이다.

즉 톰슨의 균형을 잃어버린 삶은 이성적 가치관이요 기술 추구, 성장 추구이며 외적인데에 가치관을 두고 소외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적인 삶을 버리고 겉멋만 들어 사는데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76~77페이지쯤에 수많은 사람들이 팔다리를 쓰지 못하고 비탈길에서 가슴으로 큰 바위덩이를 굴린다. 다른 사람과 부딪혀 떨어지면 서로 욕을 하고 다시 밑에서부터 굴린다. 사람의 욕심이다. 집안의 구석에 쌓인 먼지처럼 그것이 쌓여 수십배가 된모습이다. 차츰차츰 먼지 쌓이듯이 영성을 빼앗기고 신앙을 빼앗기고 묙심만 쌓인다.

 

본문 말씀에서 1,5,16절 말씀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만 한다.

구제에 동참하려고 해도 진심이 아닌 명분을 위한 것, 헌금조차도 그렇게 한다. 시험들 수 있는 단초이다. 교회 주보에 헌금 명단을 내는 것은 본인이 낸 것을 잘 접수하였다는 표시이지만 별도의 헌금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헌금하는 모습은 사사시대와 같다. 성도님들이 교회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나선다.

감사한 일이다.

 

동남아 선교를 위해 파송된 분이 있다.

그 나라의 장티푸스로 국민들이 죽어가므로 병원을 세워주기 위함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반기질 않는다. 병원보다는 우선 굶어죽는 이가 더 많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먼저 세운 병원을 구경시키는데 보니 의사와 환자가 텅텅 비었다. 가난한 자는 돈이 없어 들어오지 못하고 부자도 의사가 없어 치료받지 못한다.  병원을 활용치 못하니 병원세울 돈으로 식량을 주면 어떻겠는가 하여 한국 교회에 연락하니 그런 곳에는 돈을 쓸 수 없다면서 선교 자체를 포기한다. 선교 구제에 대해서도 진정 하나님을 위하고 고통받는 이를 위한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대에 찾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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