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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140404 河回마을과 良洞마을

이른 아침에 안동을 거쳐 경주로 향하였습니다만 고속도로변 멀리 산등성이에는 상고대가 피었습니다.

안동의 하회(河回)마을입니다. 오른쪽 사진의 윗중앙부 깎여진 절벽으로 보이는 곳은 마을 중앙 낙동강 건너편의 부용대입니다.

양반 명문가의 고풍스런 주택들이 모여있습니다만 실지 사람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풍산 류(柳)씨가 600여년간 살아온 집성촌으로서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휘감아도는 형태의 안동의 마을로서 경주 양동 마을과 함께 유네스코에 등재된 마을입니다.

엘리자베스여왕이 다녀간 하회마을은 낙동강변에 평지를 이루고 있는 마을입니다.

일전에 교회 선교 관계차 지나던 길에  들렀던 곳이지만 이번엔 가족이 함께 하였습니다.

마침 현지인으로부터 확인 결과 해마다 지붕에 올리는 볏집은 볏단을 묶는 작업을 기계화하여 잇고 있으며

방아간옆에는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마크가 있는 하회예배당도 보입니다.

교회 종탑의 내부 모습도 확인해 보았습니다. 철골 구조입니다.

낙동강 유속이 느린 듯 보이지만 모래톱 건너편에는 절벽을 이루고 푸르고 깊은 수심도 보입니다.

하회마을 앞의 탈 전시관에는 세계 여러나라의 탈도 전시되어 있네요.

세계 여러 곳의 탈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실지 형형색색의 나비날개 실물로 만든 그림입니다.

연이어 경주에 소재하였지만 포항에 가까운 "좋은 마을"이란 뜻의 良洞마을도 방문하였습니다.

초입엔 점방이 있네요.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는 젊은 점방 여주인께도 감사드립니다.

평지의 하회마을에 비하여 양동마을은 작은 동산위의 예쁜 모습의 마을입니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을 휘감은 평지이지만 이곳 양동마을은 참으로 아기자기하게 보입니다.

양동마을 전경 영상입니다. 

내외담 사이로 아녀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보입니다. 1459년에 세워진 서백당(書百堂)이란 현판은 참을 인(忍)자를 백번 썼다고 하는데

참을 忍자는 참으면서도 칼을 가슴에 품고 있는 형국이니 너무 참으면 자신을 상하게 되지 않나 하였더니 너무 부정적으로 해석치 말라 하십니다.

자원봉사하시는 문화해설사 여강 이씨 문중의 14대손인 67세정도의 李선생님이 심기가 상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왼쪽 사진 무첨당은 부끄러움이 없도록 살라는 뜻이 있는데 오른쪽 현판은 흥선 대원군이, 왼쪽 현판은 중국 사신이 와서 보고 중국에서 직접 써서 보내온 현판이라네요.

오른쪽 사진의 주택 모습은 흥할 흥(興)자 모양의 주택이라면서 설명하시는 여강 이씨 후손의 자부심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후손들도 문과 출신이 대부분으로서 많은 판검사도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은퇴하시고 고향에 묻히러 왔다는 여강 이씨 14대손인 67세되신 마을 어른 李선생님으로부터 마을에 대한 유래도 듣습니다.

아주 먼 옛날 신라시대는 모계 사회로서 임진왜란 이전까지도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장가를 왔다네요. 여러 형제가 있어도 남자들은 처가살이로서 뿔뿔이 흩어지므로 유산을 장남한테만 주었답니다. 마침 이 곳의 부유한 유씨집의 무남독녀에게 외간 남자가 장가를 와서 여기서 경주 손씨가 발현되었고 경주 손씨에게 다시 남자가 장가를 와서 여강 이씨가 발현되었으며 작은 산등성을 사이에 두고 경주 손씨와 사돈되는 여강 이씨의 종가가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종손, 장손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습니다만,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도 성씨별로 따로 모여 가르치므로 서당도 2개랍니다.

양동마을이 경주 소속이지만 포항에 가깝고 내 고향도 포항이라 하였더니 바닷가 사람은 옛날엔 천하게 여겼다고 말씀하시니 은근히 자존심이 끓어 오릅니다.

여강 이씨가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란 말을 들었지만 참을 인(忍)에 대한 시비로 마음이 상하셨는가 하여 내 본향은 월성 이씨 대원공파의 장손이라 말하였더니  왕손이라면서 왕손은 양반 상놈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왕손으로서의 후손들이 경주 가까운 포항으로 많이들 이주하였다면서 졸지에 내 자신이 왕손이란 칭호에 감읍합니다. 하면서도 마을에 있는 두 그루의 오래 된 은행나무가 분명 암수인데 지금은 두 나무 모두에게서 열매가 맺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는 말씀으로서 세월이 흐르면 호르몬의 변화로 남성이 여성화되고 여성이 남성화되는 것처럼 지금은 왕손이며 양반 상것이 상관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서로가 결론을 짓습니다.

경관만을 감상하며 지나쳐 보는 것보다는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이 2배이상의 재미와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비록 바늘 꽂을 땅조차 가지고 있지는 않은 주제이면서도 내 자신은 왕손이지만 모든 유산 상속을 포기하고 숟가락 하나라도 내 힘으로 일구어내었다는 자존감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면서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내 노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도움 받기보다는 도움 주기를 원하고 배려해 주기를 원하는 삶을 살면서도 틈이 나는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곳의 여러 사정을 보고 배우며 자식에게도 이러한 습성을 물려주어서인지 부모로서는 걱정은 되지만 먼나라의 여행을 홀로 다녀오는 자식을 바라보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해 보입니다.

주일학교 시절 어릴 적엔 잠자기 전과 아침에 깨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커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느낀다는 자식의 말에도 믿음이 갑니다.

그리하여 양반도 상놈도 아닌 왕손인 내 가족은 선조들이 살았던 경주의 옛이름 월성의 숙소에서 이틀 밤을 묵습니다.  

하면서도 경주와 월성은 다름을 봅니다. 그래서 다음 글을 "선조의 땅 월성"이란 제목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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