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말씀
140601 조원형목사님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어떤 이가 지옥에 갔더니 리모델링을 한다고 한다.
천사가 와서 설명하기를 옛날엔 지옥에서 못견뎌 했는데 지금은 지옥조차 우습게 보아 온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단다. 양심이 화인맞아 더욱 악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천국도 가보니 리모델링이라. 아무나 천국 갈 수 없도록 안면 인식기를 설치했는데 얼굴을 뜯어 고쳤기에 더욱 첨단인 인식기를 설치중이라 한다.
옛날엔 지옥 가는 것을 두렵게 여겼는데 언제부턴가 지옥은 없다 한다.
지옥에 대한 경계심을 잊고 산다. 죄를 지으면 처벌이 솜방망이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나와서 평안히 지내지만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속에서 산다. 가해자는 밥 먹여주고 병원 보내주고 해꼬지 당할까 하여 보호해 주지만 피해자는 버려진다.
서해교전으로 아들이 죽었는데 한두살 먹은 어린 아이를 버리고 간 여자에게 그 몫이 돌아간다. 현대 속에서 천국과 지옥이 있어 신앙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신앙인이 깨어 있어야 한다. 미혹받고 시험받고 귀한 신앙마져 잃어버린다.
믿음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적을 많이 행하셨다.
살리고 치료하고 먹이셨다.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셨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 말씀은 심판의 이적이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열매맺지 못하리라' 길거리에 서 있는 무화과 나무에게 선포된 말씀이다.
신학자들은 난해한 말씀이라 평가한다. 먼저, 왜 멀쩡한 나무에게 그러셨나? 예수님의 실수이다. 둘째는 이러한 이적에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믿으라고 주신 것이다. 이해가 안되면 기다리고 기도해야 한다. 세째는 지극히 개인문제라고 폄하한다. 예수님이 힘들고 배고프셨기에 섭섭해서 하신 말씀이라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4장에서 40일 금식하시고도 시험에 넘어가지 않으셨는데 홧김에 그러셨을 리가 없다.
감추어진 내용이 수없이 많다. 기다리면 나중에 깊은 뜻을 헤아린다.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잘못 기록된 것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으로서의 배운 교훈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있다. 죄를 지으실 수 없는 것이고, 또 죽으실 수가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의 밭에서 감추인 보화와 진주 장수 비유가 있다. 그 보화와 진주의 실체는 십자가의 복음이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이성적으로만 도덕적으로만 측정할 수 없는 생명의 책이다. 선하신 분으로서 선하신 뜻을 품고 있다. 그 결과는 구원이고 생명이다. 성경은 아는데까지만 알고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 맡긴다. 의미없는 내용이 없다.
가라샤 지방의 무덤사이 귀신들을 돼지떼에게로 몰살하게 하신다.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준다. 이는 여인에게 더큰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늙은 아버지의 장례를 놔두고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케 하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다. 이는 사명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성경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21장과 마가복음 11장 12~14절의 내용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하게 하러 가시다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고 성전을 나오신 후 그 나무가 죽은 것을 제자들이 확인한다. 하루만에 말라죽은 것을 보고 제자들이 놀란다. 심판은 오늘 선포되지만 그 과정은 무화과 나무에게 하루가 걸렸다. 반드시 선포된 심판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왜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셨나.
사람이 죄를 범하면 제사법을 만들어 짐승이 대신 벌을 받게 했다. 흠없는 짐승이 사람의 죄 때문에 죽었다. 성전이 더러워진 것을 가죽 채찍을 만들어 상을 엎으시고 짐승을 내모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헐혈로 만들었다고 진노하신다. 그 성전 대신 심판의 대상을 무화과 나무로 벌하셨다.
내 죄 때문에 내 주변의 것을 치실 때가 있다.
그러면서 우리를 깨닫게 하신다. 성전은 하나님의 몸이다. 그 성전에 내려진 심판이 예수님 십자가 사건이후 돌 위에 돌이 남지 않게 된다.
수많은 이적 중에서 심판의 이적은 딱 한번, 이 사건이다.
나를 치실 것을 내 영혼을 깨우치시기 위해 내 몸, 내 소유를 치실 때가 있다.
성실 겸손한 마음으로 명예, 욕망의 다툼의 자리가 되지 않고 사랑 긍휼의 성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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