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던 여자라
140601 조원형목사님
....그러므로 나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상 1:21~28)
말라노 성당에서 여자의 비명같은 통곡이 들린다.
암부르시우스 감독이 그 소리에 놀라 교회로 달려가보니 한 여인이 몸부림치며 기도한다. 근 한시간을 기다리니 여인이 지쳤는지 기도를 쉬는 것 같아서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아들이 허랑방탕하다가 이단에까지 빠졌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여인이 대답한다. 이에 암부르시우스 감독이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말한다.
본문에서 한나의 기도 내용이 실현되어 그에 부응하는 이야기를 한다.
암부르시우스 감독이나 엘리 제사장이 훌륭했다기 보다도 기도하는 어머니 때문에 시대에 훌륭한 사람이 나온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어머니가 통곡하며 기도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기도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식에 대한 노고, 수고, 헌신이 있다. 부모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분신이다.
옛날 사람을 등용시킬 때 부모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선출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모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러나 나이들어 순종하기보다도 따지고 반항하기 쉽다.
욥기서 42장에서도 욥처럼 경건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하나님을 공경했지만 고난중에서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고난이 너무 크고 견딜 수 없어서 원망과 불평을 토해내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뉘우친다.
부모 존경하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다. 부모의 노쇠한 모습이 불쌍해서 보는 분과는 다르다. 잠언 16:31에서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말씀한다.
'벨리페 모랄레스'라는 여인의 짧은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온두라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중산층 생활을 산다. 뉴욕, 워싱턴 DC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느낀다. 부랑자, 노숙자, 아편 마약에 취한 이들도 본다. 하면서도, 레이건 기념관 앞에서 관람하는데 뒤로부터 나를 도와 달라는 한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여행중에 그 소리를 듣고는 귀찮은 마음에 동전을 꺼내어 주니 그게 아니라 우체국까지만 데려다 달라 하여 자세히 보니 장님이다.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하며 중산층이 되었으나 자신의 처음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 여인을 우체국까지 데려다 주고는 오히려 내 눈을 뜨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사건에 부딪히며 까마득히 잊었던 내 실체, 내 근본,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생각해야 한다.
근본의 대인 관계, 가족 관계를 개선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부모가 늙고 노쇠해서 자식에게 기대어 살지언정 부모는 자식의 평생의 은인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정상인 사람은 대인 관계, 이웃 관계, 친구관계도 원활하다. 부모는 나보다 앞서서 시련, 고통을 먼저 겪으신 분이다. 먼저 인생을 사신 분으로서 배워야 한다.
이밀은 촉한 사람이다.
한무제가 촉한을 정복하고 포로를 삼는다. 군인, 벼슬아치들을 포로로 끌어오는데 그 중 한사람인 이밀의 사람 됨됨이가 괜찮아 보인다. 벼슬을 내리려 하니 은혜는 감지덕지하지만 연세 96세인 할머니가 있다고 말한다. 본인 나이 40여세에 할머니가 노쇠하시고 병약하여 모시므로 돌아가실 때까지만 모신 후에 충성하겠다 한다. 반효지교(까마귀는 부모가 늙어 노쇠하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를 예로 드니 한무제가 그 청원대로 한다.
성경 본문에서 나는 주, 당신 곁에서 기도하던 여자라. 한나가 엘리 제사장에게 말한다. 한나는 평탄한 가운데 사무엘을 키운 것이 아니다. 자식을 못낳아 후처로부터 괄시와 무시를 당하며 기도로 얻은 아들이다.
부모의 사랑을 배신하는 것이 가장 큰 배신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복음 12:5~6에서 가난한 자에게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잘 하는 것이라는 말은 가룟 유다의 말이다. 부모 사랑은 부모에게 해야만 부모 사랑이다. 부모와의 관계, 세대 차이라 하지만 30년 50년 차이이다.매우 크지만 그 슬하에서 자라왔음을 알아야 한다.
워리 파이퍼 교수의 "서로의 은신처"라는 책이 있다. 노인에 대한 사랑은 자기 미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한나의 법칙, 사무엘의 법칙이 있다. 동일한 법칙이다.
짐을 맨 처음 나를 때는 소, 말, 낙타, 나귀의 등을 이용했다. 그 다음에 마차가 생겼다. 그러다가 자동차가 생겼지만 길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저항감 때문에 바퀴 수명이 오래 가질 못했다. 기계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지만 땅과의 저항감이 문제다. 자동차가 나온 후 20년 정도를 그렇게 다녔다.
이에 "저항이 아니라 흡수다" 라는 이론으로 바퀴를 고무로 만들었다. 그 후에 발전하여 그 안에 튜브를 넣고 공기를 넣는다.
저항 세력보다는 수용 세력을 먼저 터득해야 성공한다.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성공할 수 있다.
늙고 노쇠하면 귀찮은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수용하면 큰 사람이 된다.
한나가 반항감으로 저항하며 살았다면 자식대에 가서 위대한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감내하고 제사장으로부터의 비난과 훈계도 받아들였다. 용서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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