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심하여 모이라
140608 조원형목사님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18~20)
렉스 이븐의 짧은 글이 있다. "이루 아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라는 책이다.
미국에서는 동네마다 아이들의 야구 시합이 성행한다. 부모들도 모여서 응원한다. 렉스 이븐은 5살때부터 야구를 통하여 신조가 형성되었다.
당시 야구 시합에서 안타를 쳐서 1루로 나간다. 2루에 있는 친구가 3루로 뛰어야 하는데 자기 발만 쳐다본다. 주위 관중이 소리쳐서 뛰라고 해도 자신의 발만 쳐다본다. 그 후의 승패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 장면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경쟁 사회에서 모두가 뛰어가는데 자신을 살피는 신조를 이때에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에 미국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생활이 넉넉한데도 상처가 깊거나 삶의 의욕이 없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삶이 뒤쳐진 것 같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있게 되어 감사하게 된다. 일등하는 인생뿐만 아니라 뒤쳐지지만 삶의 의미를 터득하는 인생도 감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신앙인으로서 성공 지향보다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사회학적 통계라는 용어가 있다.
교회 성장학을 가려낸다. 성도가 한주간을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면 불안한 마음이 일주일 내내 들게 된다.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기도도 하고 성경을 읽지만 해소되지 않는다. 두주째 빠지면 안나가게 되는 이유가 생기게 된다. 그러다가 세주째에는 뭔가 모르게 걱정거리가 생긴다.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뭔가 모르게 낭패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4주째 빠지면 덤덤해진다. 그러면서 옛날 열심했던 신앙 생활조차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교회와는 이미 떨어진 생활을 하게 된다. 한두달, 서너달이 넘어서서는 자신이 술집에 앉아 있거나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방랑자가 되고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인생으로 허무감을 느끼게 된다.
성도는 이 보고서를 보며 한주간에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와야 신앙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은혜받지 못한 공치는 날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결된다. 교회에 그냥 왔다가 가는 것 같아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곳이 교회이다.
본문 8:20에서 두세사람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이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계신 곳이다.
초대 교회 이후 세상 끝날까지의 예수님의 약속이다. 예수님의 영이 함께 계신 곳이다. 우리 마음에 은혜와 긍휼을 제푸시는 곳이다. 성도는 교회를 나와야 한다.
올해에 들어서도 복지원의 나무가 많이 자랐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면 잎을 떨구고 죽은 것 같아보여도 가지를 꺾어보면 살아있다. 꺾어진 가지는 얼마후에 다시 꽃피는 봄이 되어도 죽어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이 유지된다.
내 생활이 형식적인 교회 왕래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교회에서 함께 함으로서 그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신앙이 활성화된다.
초대 교회의 생활은 현재 교회의 모델이다.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여 교회가 부흥한다. 신앙 생활의 모델은 예수님이다.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닮아가야 한다. 초대 교회의 당시 사회적 배경은 계급 사회였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이었다. 당나귀는 말을 알아둗지 못하고 노예는 말을 알아들을 뿐이다. 노예는 말을 못하게 했다. 말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말을 할 줄도 모른다. 노예들은 의사표시로 손짓발짓만 했다. 귀족들을 전쟁에서 노예로 끌고오면 혀를 잘랐다.
성경은 달랐다. 빌레몬서에서 노예가 도망갔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 신앙을 배운다.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추천서를 함께 써서 보내며 형제라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된 형제이다. 당시 로마의 1/3이 노예이다.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며 반화하여 그리스도국가가 되었다.
본문 말씀에서 합심하여 모여라, 모이기를 힘쓰라 말씀하신다.
모이기가 싫어지면 신앙이 병들었거나 교회에서 하나님과 떨어진 사람이다. 성도들은 교회에 모여야 한다.
닭은 모이를 주면 쪼아먹는다. 계속 모이를 주면 숨이 차서 헐떡일 때까지, 목에 모이가 찰 때까지도 먹는다. 이럴 때에 굶주렸던 닭을 넣으면 정신없이 모이를 쪼아 먹는다. 그러면 이 때 목에까지 찼던 배부른 닭도 다시 모이를 또 먹는다. 이것이 공동체 생활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옛날 나무를 때는 아궁이가 있었다.
불쏘시개를 넣어 불을 붙인 후 젖은 나무를 넣어도 금방 마르고 같이 탄다. 젖었지만 잘 타오르는 그 나무를 다시 끄집어내면 그냥 꺼져버린다.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이다. 신앙 생활은 모임으로 유지된다.
펭귄의 협력이 경쟁보다 낫다는 글이 있다. 요차이 벤클러의 글이다. 팽귄은 사냥을 할 때에도 서로 협력해서 물고기 떼를 몰아서 방향을 유리하게 바꾸도록 하여 사냥을 한다. 회사에서도 서로 경쟁하여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회사보다도 서로 협력하여 발전하게 하는 회사가 더 부흥한다.
모여서 배려, 용서, 이해, 협력하는 교회, 다 모여서 함께 마음을 같이 하여 믿음이 성장하고 열매를 더 맺는 축복된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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